[르포] 새벽 추위 속 일용직들 "새해 일자리 많아졌으면…"

남구로역 인력시장 가보니
일감 구한 10~20%만 현장 이동
경기 냉각에 대부분 빈손 귀가
"일주일째 일감 못구하니 막막해"

수백여명의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이 30일 오전 5시경 서울 구로구 구로동 남구로역 인력시장 인근에 모여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이건율 기자


“일자리 없어도 와야죠. 가족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어요”(중국 연길 출신 김 모 씨)


지난달 30일 오전 4시 40분. 서울 구로구 구로동 남구로역 인력시장으로 털모자와 방한복을 두텁게 입은 건설 일용직 인부들이 모였다. 영하 7도의 한파에 인부들은 자판기 커피와 담배 한 개비로 몸을 녹였다. 동이 채 트지 않은 시간에 인부들의 안광이 생기 있게 번쩍였다.


인부들은 일자리를 기다리며 “요즘 건강은 어떠냐” “요즘 일은 어떠냐”라고 묻는 등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 가끔씩 큰 소리를 내며 웃는 인부들도 보였다. 오전 5시경이 되자 남구로역 인근은 600~700여 명의 인부로 가득했다.


남구로역 사거리 주변 공터와 갓길에는 인부들을 싣고 갈 대형 차량 십여 대가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인력사무소의 ‘반장’들의 선택을 받은 인부들은 차량에 탑승해 서울과 이천·화성 등 경기 지역의 현장으로 이동한다. 인부들에 따르면 전체 인부의 10~20%만 차량에 탑승할 수 있다.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인부들은 오랜 기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중국 연변 출신인 김 모(67) 씨는 “매일 새벽 이곳에 나오고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며 “젊고 재빠른 사람들을 먼저 데리고 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나는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부들이 받는 일당은 각자 가진 기술과 개별 현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평균 16~25만 원 수준으로 일당의 10%는 인력사무소가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공공근로를 수년 간 해왔다는 홍 모(70) 씨는 “모든 것은 ‘오야지(일터 작업조 두목)’에 따라 달라진다”며 “일당 뿐 아니라 싣고 가는 사람 수도 천차만별이다. 한 곳에서 많게는 열 명이 넘게 데려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새벽 5시 10분경 6명의 인부가 탑승한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이 처음으로 시동을 걸고 현장으로 향하자 남겨진 인부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30일 오전 5시 10분께 서울 구로구 인력시장에 주차돼 있는 차량들. 일자리를 찾은 인부들은 차량을 타고 서울과 경기에 위치한 현장으로 이동한다. 이건율 기자


건설 일용직 일자리가 줄어든 이유는 건설업 경기가 얼어붙은 영향이 가장 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폐업 신고를 한 건설사는 198개에 이른다. 125건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0%가량 급증했다. 자금 여력이 없는 지역 건설사들이 분양에 어려움을 겪고 결국 유동성 위기로 줄폐업 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왔다는 중국동포 강 모(61) 씨는 “5년 째 인력시장을 오고 있는데 이렇게 일자리가 없었던 적이 없다”며 “연말에는 평소보다 일이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고 설명했다.


오전 5시 50분이 지나자 일부 인부들은 “오늘도 허탕”이라며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인부들은 대부분 당일에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부들 대부분이 중국인·조선족인 탓에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단기간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연변 출신인 김 모(65) 씨는 “일을 구하지 못하면 집에 가서 쉬거나 공원에 놀러 간다. 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오전 6시 20분경에는 인부 대부분이 자리를 떠났지만 일부 인부들은 여전히 남았다. 줄 담배를 피우던 최 모(54) 씨는 “일주일 째 일을 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서 쉬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많은 인부들은 새해에는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박 모(59) 씨는 “단둘이 살고 있는 어머니가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다”며 “새해에는 일이 많아져 어머니가 좀 편하게 지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중국 연길 지역 출신이라는 김 모(66) 씨는 “열심히 일하려고 매일 인력시장을 찾아오지만 일이 없어 돈을 벌기가 어렵다”며 “노력하는 만큼이라도 보상 받으면 좋겠다. 이 나이에 별다른 소원은 없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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