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정책금리가 지난해 7월 첫 역전된 이후 1.25%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은과 미 연준이 생각하는 최종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한미 역전 폭은 1.50%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새해에도 통화정책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기적인 한미 금리 역전은 문제가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설문 결과가 나와 시선을 끌고 있다.
2일 한국경제학회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30일까지 ‘한미 통화정책’을 주제로 경제학자 3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한미 금리 역전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50%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금리가 더 높아져도 상관없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금리가 더 높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답변을 골랐다.
나머지 44%는 “양국 금리가 큰 격차가 나지 않는 수준의 단기간 변동이라면 방향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를 꼽았다. 사실상 94%가 짧은 기간 한미 금리가 역전되더라도 문제될 것 없다고 본 셈이다. 특히 ‘한국의 금리가 더 높아야 한다’라는 답변을 고른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국 금리가 반드시 미국 금리보다 높아야 한다고 보는 경제학자가 없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한미 금리 역전에도 대규모 자본 이동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곽노선 서강대 교수는 “올해 중까지 한미 금리 차의 역전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된다”라며 “양국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정책의 입장(positioning)에 따라 정책금리가 결정되어 한미 정책금리를 결정하게 될 것이며 큰 폭의 국제적 자본이동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유장희 이화여대 교수는 “양국 금리가 큰 격차가 나지 않는 수준의 단기간 변동이라면 방향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약간의 격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잘라 말했다.
단기적으론 상관없으나 중장기적으로 한국 금리가 높아야 한다고 한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한미 금리 역전이라고 전망되지 않은 경우는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유발할 수 있다”라며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진행 중임에도 경기상황이나 국내 금융시장 여건으로 금리 인상이 어렵다고 평가되면 그 자체가 외환시장을 중심으로 경제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간 변동이라면 방향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허석균 중앙대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가 외환위기 트라우마로부터 왔다고 평가했다. 허 교수는 “양국 간의 금리 수준 차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우리나라의 금리가 큰 차를 두고 장기간 하회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나라 인플레이션이 미국에 비해 급격하지 않아 완만하게 금리 조정할 여지가 있고 그 과정에서 양국 간 금리 차 발생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환율 불안이 나타나지 않는 선에서 한미 금리의 최대 역전 폭을 어느 정도로 보고 있을까. 설문 결과 0.50%P 이하(9%), 0.75%P(29%), 1.00%P(18%), 1.50%P(18%), 1.50%P 이상(6%), 기타(21%) 등으로 집계됐다. 0.75%포인트를 선택한 답변이 가장 많았지만 고른 분포를 고려하면 적정 수준을 특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1.5%포인트 이상 벌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질문에 대한 세부 답변은 주로 기타 의견을 낸 경제학자들이 상세히 내놓았다. 기타 의견을 고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무위험 이자율 평형이론이 성립된다면 양국 간 기준금리 차이를 좁힐수록 환율방어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최근 환율은 이와 전혀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라며 “따라서 현시점에서 환율에 부담을 주지 않는 기준금리 차이의 최대폭을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어윤종 고려대 교수도 기타 의견을 고른 뒤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한미 간 금리 차이 이외에도 경제 기초요건과 금융시장 건전성에 의해 결정된다”라며 “따라서 한미 간 금리 차이만을 고려하여 외환시장이 감내할만한 금리 차이의 최대수준을 논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영진 인하대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 폭이 1.50%포인트 이상 벌어져도 된다고 봤다. 윤 교수는 “외국인 자금이 올해 소폭 순유입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국내 외환 부문에 위험을 일으킬만한 대규모 순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라며 “지난해 정체됐던 거주자 해외투자가 올해 미 연준의 긴축속도 조절에 따라 재개된다면 외환시장의 차익거래 유인이 확대되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 규모를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올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 과정에서 한미 금리 격차 이외에 우선해야 할 요소에 대한 질문엔 53%가 ‘국내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가계부채’와 ‘국내 경기’는 각각 24%, 21%가 골랐다. ‘기업자금조달’은 불과 3%에 그쳤다. 특히 ‘외환유출 위험’을 고른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내 인플레이션을 고른 어윤종 교수는 “2023년은 국내외 경기의 하방 압력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서서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다만 현재 인플레이션은 그 목표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여전히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변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답변을 고른 윤영진 교수도 “통화정책의 단일 목표는 물가안정이며 이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금융안정에 유의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한은의 금리 결정에서는 당연히 물가 안정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할 것이지만 국내외 경기 둔화나 기업 자금 사정 악화를 감안해 금융안정에 더욱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물가가 지난해보다 상당히 낮아진 3%대 중반이 될 수 있다고 본 허석균 교수는 가계부채를 골랐다. 허 교수는 “시간이 걸려도 물가상승률이 안정되고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가 잡히는 것이 가시화된다는 전제로 한은이 고려할 가장 큰 문제는 가계부채”라며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은 주택가격 연착륙, 전월세 주거서비스 시장의 안정,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채무 부담 등 여러 이슈와 연계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