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증액 힘든데 稅감면 생색내기…'조건부'에 효과 미지수

[반도체 稅지원 확대]
◆'세액공제 최대 35%'의 허실
정부 "주요 경쟁국 대비 최고 수준 지원"이라지만
D램·낸드값 떨어지고 재고 넘쳐나 투자 여력 부족
국가전략기술 지정도 쉽잖아 효과 내기에 '걸림돌'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도체 등 세제 지원 강화 방안'을 보고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3일 ‘반도체 세액공제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주요 경쟁국 대비 최고 수준의 세제 지원책”이라고 자평했다. 세제 인센티브를 경쟁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만큼 앞으로 기업이 세 부담을 이유로 국내 투자를 주저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정부안대로라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은 명목상 국내 설비투자 비용의 최대 25%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겉보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세 혜택(25%)을 받는 미국 기업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감면되는 세금을 추산해보면 지원 수준을 실감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개편에 따라 내년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3조 6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바꿔 말하면 기업의 세 부담이 그만큼 낮아진다는 의미다. 이어 2025년부터는 올해 대비 연 1조 3700억 원의 세 부담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SK하이닉스의 한 분기 영업이익(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1조 6555억 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기존 세액공제율 30~50%까지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원”이라며 “이번 조치가 우리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확보와 재도약을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계도 이날 정부 발표 후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투자 의지가 꺾일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적절한 조치(대한상공회의소)” “반도체 산업에 최악의 겨울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민간투자의 불씨를 이어가기 위한 마중물(전국경제인연합회)”이라고 화답했다.


다만 한 꺼풀 들춰보면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단적인 예로 대기업에 준다는 최대 25%의 세 혜택 중 10%포인트는 투자 증가분에 대한 공제다. 이는 당해 연도 투자액이 지난 3년 평균 투자액을 넘을 경우 증가분에 한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조건부 혜택이다. 그마저도 올해 투자에만 적용되는 한시 특례다. 정부는 최대 25%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지난 3년 동안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기업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25%를 받기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재고가 넘치는 상황에서 예년보다 투자 규모를 더 늘릴 기업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원’이라는 정부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안에 대해 “공제율이 8%에 불과했던 기존 안보다는 낫지만 조건부 혜택 없이 순공제율을 20%까지 높였던 여당안에는 못 미친다”면서 “한시적으로 늘려준 공제율을 덧대서 ‘우리도 다른 나라만큼 공제를 해준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조차 투자 증가분의 세 혜택 시한을 올해로 한정하지 않고 3년은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세수 급감 우려에 밀려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올해 같은 투자 혹한기에 그나마 돈을 쓸 곳은 사실상 삼성전자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투자를 한다고 한들 예년보다 과감한 수준으로 나설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설비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무조건 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려면 별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를테면 반도체 설계자산(IP) 검증 기술이나 테스트 설비는 국가전략기술 목록에 올라 있지 않아 기업이 관련 설비를 들이더라도 공제를 받지 못한다. 지원 대상을 추가하려 해도 심의하는 데만 통상 6개월가량이 걸린다.


정부는 경기 침체를 넘겠다며 12년 만에 임시투자세액공제를 꺼내들었으나 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투자 증가분 세제 지원처럼 올해 투자에 한정해 세 혜택을 주기로 한 탓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3.8%로 예상하는 등 다수의 기관이 역성장을 점치는 터라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당초 의도한 만큼 민간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세 혜택 기한을 연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투자 효과가 큰데도 대기업의 공제율 인상 폭을 가장 적게 설정(신성장 원천기술 기준)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추 경제부총리는 “이달 중으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통과를 조속히 추진할 것”이라면서 “이번 세제 지원 외에도 기업들의 투자 촉진을 위한 규제 완화와 역대 최대인 50조 원 규모의 시설자금 금융 지원 등 다각적인 방안을 지속적으로 살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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