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오래된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쇠퇴한 곳을 의미하는 ‘원도심’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는 모든 도시의 고민거리다. 전라북도 전주도 마찬가지로 ‘전주한옥마을’지구가 뜨면서 바로 옆에 있는 원도심은 발전 지체 현상이 나타났다. 전주에서 원도심은 풍남문과 전라감영·전주객사 등을 중심으로 옛 전주부성 지역을 의미한다.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대표적 핫플레이스이던 이곳은 도심 공동화 현상과 함께 특히 전주한옥마을 등 신흥 핫플레이스에 밀렸지만 이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도심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통 문화유산과 문학·예술, 그리고 노포의 음식이 어우러진 ‘전주 원도심 미식 투어’를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초청으로 살펴봤다.
여행객들로 사시사철 북적이는 전주시 완산구 ‘전주한옥마을’지구에서 서쪽으로 큰길 하나를 지나면 상대적으로 한산한 거리를 만나게 된다. 한때는 전주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풍남문을 중심으로 하는 원도심 벨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풍남문 인근 남부시장에 있는 ‘노포’ 음식점들을 먼저 찾아가 봤다. ‘현대옥’은 전주콩나물국밥을 팔고 있는 남부시장 대표 선수다. 밥과 콩나물에 뜨거운 육수를 부어 국밥을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다. 국밥에 쫑쫑 썬 오징어를 올린 것도 별미다. 옆의 ‘동래분식’은 팥죽이 주메뉴다. 넓은 대접에 새알심이 듬뿍 들어간 팥죽 한 그릇은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조점례남문피순대’ 등 전주 특산 피순대가 맛있는 집도 즐비하다.
배를 출출하게 채웠으니 본격적인 문화유산 탐방에 나선다. 풍남문과 전라감영·전주객사가 약간 비스듬히 남북으로 뻗어 있다. 풍남문은 전주부성의 남문으로 원래 둘레 2618보(약 3.2㎞)에 4개 대문이 있었다는 전체 성곽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풍남문에는 서울 동대문과 비슷한 옹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풍남문에서 북쪽으로 250m 올라가면 전라감영이다. 역시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던 것을 최근 복원했다. 정문인 포정문, 전라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가족 처소인 내아, 누각인 관풍각 등 7채가 복원돼 있다. 특히 선화당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녹두장군 전봉준이 폐정개혁안을 제시한 곳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무대로 꼽힌다.
다시 북쪽으로 250m 지점에 전주객사가 있다. 원래 감영과 한 울타리였다는데 중간에 빌딩과 도로가 들어오면서 현재는 분리된 상태다. 정면에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 쓴 대형 편액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패’는 중국 한나라 건국자인 유방의 고향을 일컫는다. 전주가 바로 ‘한나라급’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의미다.
한참 돌아다녔으니 다시 출출하다. 전주객사 바로 옆의 ‘객사길’ 주변에도 노포 맛집들이 많다. 효자문 바로 옆에 있어 상호가 ‘효자문’인 갈비탕집은 진한 양념에 바싹 구워낸 불갈비가 맛있다. 국물로는 반갈비탕을 먹을 수도 있다. 또 인근 ‘태봉집’은 복어 전문식당으로 싱싱한 복어와 함께 아낌없이 주는 미나리와 콩나물이 식욕을 자극한다. 직접 제조한 초장을 사용한다는데 복어의 향을 배가시킨다.
역사 도시답게 카페 하나에도 멋이 들어가 있다. 효자문 옆 ‘경우’라는 이름의 카페는 오래된 한옥 기와집을, 태봉집 옆 ‘한채’ 카페는 1980년대 유행하던 2층 개량 양옥을 개조했다. 얼그레이사과우유(경우) 등 시그니처 음료는 멋과 맛이 함께 살아 있다.
다시 풍남문 근처로 돌아오면 ‘행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한옥 카페가 있다. 맛있는 쌍화차와 함께 전주의 대표 예술인 대금과 가야금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1928년 조선요리전문점 ‘식도원’으로 영업을 시작했다고 하니 거의 100년 역사를 지녔다. ‘디귿(ㄷ)’ 자 건물 안쪽에 작은 연못과 정원이 조성돼 있는데 일본식 조경이다. 여기에 한옥 건물이 덧씌워져 있는 것이 이 카페의 역사를 말해준다.
여행자의 도시 전주에는 여행 전문서점도 많다. 원도심의 역사만큼이나 전주는 교양의 무게도 무겁다. 그중에서도 ‘다가여행자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서점이 유명하다.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데 예전 요양병원을 서점으로 개조한 곳이라 공간도 넉넉하다. 책을 판매하면서 여행자들이 쉴 수 있는 자리도 충분하다. 또 ‘전주현대미술관’은 옛 제약회사 건물을 재활용한 미술 공간이다. 길모퉁이에서 이런 서점과 미술관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것도 전주의 매력이다.
원도심은 전주에 더 오랜 역사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도심 거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황이라서 전주한옥마을지구처럼 단정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그 또한 멋이라면 멋이다.
전북문화관광재단 관계자는 “전주에는 한옥마을 외에 또 다른 멋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관광객들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전주)=최수문 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