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작품 보호"라지만…해외 컬렉터 구매 막아 글로벌 확대 걸림돌

[K아트 1조 시대, 성장 허들을 치워라]
<상> 구시대 틀에 갇힌 문화재보호법
"문화재 약탈·무분별 반출 방지"
현 문화재보호법 1962년 제정
해외 판매는 원천적으로 차단
국외 전시땐 반출 허가서 필수
문화재청 "해외판매 신고제 검토"

“김환기의 1971년작 ‘우주’가 2019년이었기에 순조롭게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올랐지, 제작 50년이 지나버린 지금이라면 (소유권자가 미국에 있음에도) 한국에 있던 작품을 홍콩으로 옮겨가는 게 불가능했을 지도 모릅니다.”(대형 경매회사 임원 A씨)


“영국 명문 화랑 화이트큐브가 2016년 런던에서 개최한 박서보 개인전이 ‘묘법 1967~1981’이었습니다. 첫 날에 ‘완판’을 기록했다는 유명한 전시죠.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기준으로 50년이 되지 않은 1967년작부터 선보였습니다. 외국인 혹은 해외 거주 한국인이 박서보의 초기작을 구입할 마지막 기회로 여겼을 수도 있어요.”(중견 갤러리스트 B씨)




지난해 9월 개막해 올 2월까지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열리는 한국의 근대미술 특별전 출품작 130여점은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문화재청의 심사를 거쳐 해외반출이 가능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2019년 6월 스위스 아트바젤에 참가한 국제갤러리 부스 전경. 김환기, 박서보 등 거장의 작품 중 제작한지 50년이 넘은 작품은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심사를 거쳐야 해외반출 및 판매가 가능하다. /사진제공=국제갤러리



현행 ‘문화재 보호법’은 해방과 전쟁을 거친 우리나라가 1962년에 제정한 것으로, 문화재 약탈과 무분별한 반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기에 상당히 보수적이다. 제작된 지 50년 이상 된 미술품·공예품 등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 시대착오로 여겨지는 이유다.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막한 ‘사이의 공간:한국미술의 근대’ 특별전에 출품된 130여 점은 전량 문화재청의 해외 반출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제작한 지 50년 이상된 작품인 데다, 하나같이 귀중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2021년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의해 간소화 됐다고 하지만 절차는 여전히 복잡했다. 오는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인 ‘한국의 1960~70년대 실험미술’ 전시의 경우에도 제작 50년이 지난 주요 작품에 대해서는 심사 절차가 불가피하다. 이승택·김구림·이건용 등 1960~70년대 ‘실험미술’ 혹은 ‘아방가르드’로 불리는 작가군은 박서보·정상화 등 앞서 주목받은 1970년대 ‘단색화’를 잇는 ‘한국의 블루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공립미술관 큐레이터 C씨는 “해외 전시 목적의 반출에 대해 국가기관이 의뢰하는 경우 ‘면제’도 가능하지만, 해외 컬렉터가 구입을 원하는 등 개인 간 거래가 될 경우에는 분명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갤러리현대가 기획한 '민화,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는 'K아트'의 일환으로 조선 후기 민화를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하고 해외 순회전까지 기획했으나 정작 작품판매는 문화재보호법에 막히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한국은 내수시장이 협소하기에 예술성에 비례해 시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외시장 개척이 필수적이다. 김환기·이우환·박서보 등은 해외 전시를 발판으로 확보한 글로벌 컬렉터들이 있었기에 명성에 걸맞은 가격대 형성이 가능했다. 이중섭·박수근 등의 거래가격이 박스권에 갇힌 상황은 거래량 부족도 원인이지만 해외 판매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게 진짜 이유다. 원로 거장의 작품을 ‘문화재급’으로 본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영예’일 수 있지만, 작품 거래 활성화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규제’다.


고미술에 대한 반출 규제는 현대미술보다 더욱 엄격하다. 50년 전통의 갤러리현대는 ‘K아트’의 일환으로 한국의 민화를 현대적 미감으로 재조명했고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을 비롯한 해외 기관에서 순회전까지 열어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작품 거래는 ‘문화재 보호법’에 막혀 고전했다. 호주 시드니의 한 미술관이 한국실에서의 전시를 전제로 책가도 민화를 구입한 사례가 있을 뿐이다. 해외 미술관의 한국실 담당 큐레이터 D씨는 “더 좋은 한국 유물을 확보해 한국문화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지만 예산이 있어도 구입 절차가 많이 까다롭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해외 박물관·미술관 한국실이 중국·일본에 비해 왜소한 경우가 많은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문화재보호법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한때 ‘잘 나가던’ 고미술과 전통미술이 국내에 갇혀 지금의 저평가·침체의 늪에 빠진 상황을 되새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도 잘 가꾸고 관리하면 ‘한류’가 된다”면서 “단순히 50년을 단위로 끊을 게 아니라 시대별 세분화, 유관 기관의 협력이 필요하고 해외반출 규제보다는 해외로 나간 문화재·미술품 등의 목록화가 더 실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규정을 재정비를 준비하고 있다. 문화재청 측 관계자는 “해외 박물관·미술관의 문화재 구입과 수증에 대한 절차는 대폭 간소화 했고, 50년 이상 된 문화유산 중 ‘비문화재’로 확인해 반출·거래를 허가하는 비중도 전체의 내략 95% 이상이다"라며 “그럼에도 외국으로 판매·수출할 경우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어 관련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개선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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