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하얀 얼굴·붉은 볼…아름다워 보이려는 인간의 욕망

■메이크업 스토리
리사 엘드리지 지음, 글항아리 펴냄


분칠로 얼굴을 하얗게 보이려했던 마음은 동서고금이 비슷했다. 유럽과 극동 지역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에서는 공통적으로 피부 미백에 공을 들였고, 화장품에 납 성분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희고 밝은 피부가 여성의 생식능력을 암시하기 때문에 피부 화장을 통해 이를 강조하려고 한 것이라 분석한다. 이 뿐 아니다. 태닝이 유행하기 전까지, 태양에 노출된 적 없는 피부는 실내에서 생활하는 여성이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한 방법이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헤라 여신이 “하얗게 무장한” 존재로 찬양하듯 묘사된 것도 그녀의 높은 지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신간 ‘메이크업 스토리’의 저자는 “일단 하얗거나 창백한 안색은 햇볕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는 상류층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화장품 재료를 추적한다. 납성분 뿐만 아니라 악어의 배설물인 크로크딜리아에 녹말이나 찌르레기 똥 말린 것을 섞어 사용하라고 추천한 고대의 기록이 전한다.


화장품 브랜드 랑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저자는 케이트 윈즐릿·키라 나이틀리·엠마 왓슨 등 톱스타를 맡아온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신이며 ‘세계적인 뷰티 멘토’로 통한다. 그의 첫 책은 화장의 근원을 파고들어 화장이 인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화장품의 역사는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짚어준다.


화장의 인류사적 전개를 저자는 빨강, 하양, 검정의 색깔 키워드로 풀어낸다. 강렬한 색 빨강은 갈망, 사랑, 열정, 젊음, 건강을 상징하며 루주로 쓰였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은 젊어 보이기 위해 입술에 루주를 발랐고 그 일부를 광대 부위에 발라 뺨을 발그스레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유난히 홍조 띤 뺨으로 유명했다. 그녀가 볼에 칠한 색이 ‘퐁파두르 핑크’라 불릴 정도였는데, 1758년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초상화에서도 이 고운 분홍색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름다워 보이려는 욕망, 혹은 종교적 의미와 소속감의 표현 등 화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와 공존했고 저자는 이것을 식욕이나 수면욕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속성이라고 말한다. 책의 후반부는 획일적인 미적 기준을 만들어 내는 미용산업의 논쟁거리를 비롯해 미의 개척자들과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최첨단 화장품 기술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컬러 도판이 다채롭게 곁들여져 읽는 맛과 보는 맛을 모두 충족시키는 책이다.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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