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란 말이 있다.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nomad)’을 합성한 조어다. 노트북,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시간 또는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근무를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MZ세대가 이러한 일하는 공간 변화의 중심에 서 있지만, 딱히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50~60대의 액티브 시니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공간의 제약에서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필자는 ‘실버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성이 깊다. 특히나 100세 인생의 후반전에 살고자 하는 곳은 앞으로 내가 어떠한 활동을 하면서 살겠다는, 삶에 대한 가치관과 방향성의 투영이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마천루에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고즈넉하고 여유 넘치는 삶을 추구하겠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처럼 직접 기른 농작물을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리는 모습은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을 자극한다.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로 가득 찬 도시생활의 찌든 삶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에겐 ‘시골살이’가 안성맞춤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완전한 시골살이가 아닌, ‘5도 2촌’의 생활도 있다. 1주일에 5일(평일)은 도시에서, 2일(주말)은 시골에서 보낸다는 뜻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도심에서 차로 1~2시간 떨어진 곳에 멋진 별장을 지어서 주말을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시골 마을의 폐가를 비교적 싼 값에 구입해 대대적인 수리를 통해 직장이 있는 도시(평일)와 시골(주말)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하기도 한다. 도시 집과 시골집을 오가며 사는 사람은 늘 여행하듯 설레는 삶을 살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이다. 내 주변에도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 ‘한 달 살기’를 실천에 옮기는 지인들이 부쩍 늘어났다. 요즘은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됐다. ‘라떼(나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 솔직히 내심 부럽다.
‘한 달 살아보기’는 사전 경험 없이 덜컥 이주를 했다가 겪을 수 있는 낭패를 미연에 방지하고,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쳇바퀴 돌듯 고루한 삶에 응급조치가 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게다가 짧은 여행으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하는 색다른 느낌과 매력도 있다.
필자는 이제 불과 몇 년 후면 내 인생의 2막을 시작해야 한다. 굳이 서울 도심에서 계속 살 생각이 없다. 인생 1막과는 차별화된,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고른 최종 선택지는 제주도다. 제주도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낼 것인지 고민하면서 열심히 준비 중이다.
<택리지>는 조선시대의 실학자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서이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을 고를 때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둘째 그곳에서 얻을 경제적 이익 즉, 생리(生利)가 있어야 하며, 셋째 그 고장의 인심이 좋아야 하고, 넷째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라고 한다.
고전(古典)에서 삶의 지혜를 엿보듯 현대사회에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지리가 좋고,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인심이 좋고, 산수가 아름다운 곳. 인생 후반전엔 어디서 살 것인지 잘 찾아보자.
유한준 교수의 말처럼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 답을 써야 하는 문제이며, 심지어 정해진 답도 없다. 나 스스로 묻고, 나 스스로 답하고, 나 스스로 채점을 해야 한다. 다만, 채점의 잣대 중 한 가지는 전 세계 인류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항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행복’이다. 100세 인생의 후반전에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