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 거듭된 선택은 ‘만약에 다른 것을 택했다면’이라는 생각을 꼬리표처럼 붙인다. 20~40대 여성만 해도 커리어와 사랑, 임신·출산·육아 같은 현실의 고민 속에 매번 선택의 연속인 삶을 살아가고, 대개는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품고 산다. 다음 달 26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아시아 초연 중인 ‘이프덴(If/Then)’은 이 같은 고민을 뮤지컬로 풀어낸다. 작품은 39살 여성 엘리자베스가 미국 뉴욕의 공원에서 버스킹을 구경할지, 주거환경 개선 집회에 참여할지 선택하는 데서 시작한다. 극은 버스킹을 관람하는 자아와 집회에 나가는 자아를 각각 ‘리즈’와 ‘베스’로 나눈 일종의 평행세계로 설정하며, 두 자아의 이야기를 수시로 교차해서 전한다. 리즈는 사랑에 빠져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여성, 베스는 뉴욕시 도시계획 부서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사실상 1인2역으로 극을 이끄는 엘리자베스 역할의 정선아가 있다. 데뷔 후 20년간 ‘위키드’의 마녀 글린다, ‘아이다’의 공주 암네리스 등 고대·중세 배경 뮤지컬의 화려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던 것과 달리, 담백한 의상의 현대극 ‘원톱 주연’이라서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9일 서촌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한 여성의 이야기이고 제 상황과 비슷한 면도 있다 보니,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중 배역과 같은 39살인데다 출산 후 5개월만의 복귀로 비슷한 상황이기도 하다. 극중 리즈는 아이를 낳은 후 육아 문제를 고민하며, 베스는 커리어 고민 때문에 임신중절을 택하는데, 이런 상황들을 연기하는데 배우의 경험이 영향을 주는 건 당연하다.
출연 전까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그는 “임신·출산 공백기를 겪으며 또 다른 세상을 봤기 때문에, 이입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으리라고 생각했다. 결혼 전 제안받았다면 무서워서 못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임신·출산으로 겪는 변화 속에 이전만큼 사랑 받지 못하면 어쩌나, 목소리가 변하지는 않을까, 일이 잘 안 풀리면 어떻게 하나 공연 전까지 고민의 연속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살을 22㎏ 빼는 건 물론 연습도 많이 했다. 반면 리즈의 남편이 사고로 죽은 뒤 빈 무대에서 ‘혼자가 되는 법’ 노래를 부를 때도 연기한다는 티를 내지 않고 단순히 아이와 나의 삶을 생각하기만 해도 감정이 올라오는 등 정서적, 연기적으로 깊어지기도 했다고. 그는 “1년반 경력이 끊어졌더라도 그 덕에 또 다른 기쁨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경력단절을 우려하는 후배 여배우들에게 “체력관리 등 노력에 따라 임신·출산 전보다 좋아질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는 게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을 건넨다.
‘이프덴’은 리즈와 베스 두 자아의 이야기 외에도 청년 주거, 도심 재개발, 동성결혼 등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담아낸다. 특히 남녀 각각 동성결혼 커플이 이야기의 전면에 나온다. 정선아 역시 이런 사회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 ‘이프덴’에 끌린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게 되레 리스크는 되지 않았을까 묻자 그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