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 개혁을 강행하면서 프랑스 정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개혁안에 반대하는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했고 야당도 개혁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집권 1기 당시 사회적 혼란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막혀 무산됐던 연금 개혁에 재도전한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10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주요 노조들은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파업 날짜를 조만간 정하기로 했다. 온건 성향으로 분류되는 노동민주동맹(CFDT)의 로랑 베르제 사무총장은 “노동자들을 동원해 저항하겠다”며 노동계 대부분이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조 측은 연금 수급을 위한 최소 법정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겠다는 정부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크롱 정부는 연금을 완전히(100%) 받기 위한 근로 기간을 기존 42년에서 2035년까지 43년으로 연장하는 대신 최소 연금 상한액을 전보다 늘리는 식의 ‘당근’도 포함했지만 노조는 원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연금 개혁은 역대 프랑스 정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정부가 개혁을 시도하면 이내 역풍이 뒤따랐다. 자크 시라크 정부는 1995년 공무원 정년 연장을 시도하다 3주간 이어진 거센 시위에 결국 개혁안을 철회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10년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표심을 잃어 재선에 실패했다. 마크롱 정부 역시 1기 때인 2019년 직종별로 42개에 달하는 연금 제도를 단순화하는 개편을 추진했다가 총파업에 직면했으며 때맞춰 발생한 팬데믹으로 관련 논의를 접은 ‘아픈 기억’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정부는 대대적인 개혁 없이는 현 연금 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워 연금 개혁에 재도전했다. 프랑스의 평균 은퇴 연령은 2020년 기준 남성 60.4세, 여성 60.9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으며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14%를 해마다 연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는 현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프랑스 퇴직연금이 향후 10년 동안 매년 100억 유로(약 13조 3500억 원)씩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연금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재정으로 (연금) 적자를 메워야 한다”며 “프랑스 노동자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3년여 만에 다시 칼을 뽑아 든 마크롱의 개혁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야당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여당인 르네상스를 포함한 범여권은 현재 하원 의석 577석 중 250석을 차지한 제1당이지만 과반이 아니어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통과가 어려운 실정이다. 극우정당 국민전선(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대표는 정부의 개혁안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며 각을 세웠다. 야당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 안에 우호적인 공화당(LR)은 바뀐 연금 제도를 기존 퇴직자에게도 적용해야 정부 안의 의회 통과를 돕겠다는 조건부 지지 입장이다. 프랑스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하면 정부가 표결 절차 없이도 일부 법안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의회 패싱’은 선택 사항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여론이 싸늘하다. BFM방송 등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오독사가 이달 4∼5일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가 퇴직 연령을 현행대로 62세로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특히 연금개혁안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이미 흉흉해진 민심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연금개혁안은 경기 침체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