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글로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요소 중 하나는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칼군무라는 파워풀한 안무라고 생각해요. 듣는 음악에서 더 나아가 보는 음악이 K팝의 마성의 매력인데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칼군무 안무는 충격적일 것 같아요. 아름다운 곡선미가 포인트인 한국무용 역시 K팝 안무에 적용한다면 K팝 안무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동시에 ‘K팝 칼군무의 제2막’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승희 무용을 전수받아 ‘리틀 최승희’로 불리며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 공연 ‘봄이 온다’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해 주목을 받은 한국무용가 석예빈(사진)은 1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무용 역시 칼군무와는 다른 부드러운 춤사위의 매력으로 글로벌 팬덤을 매료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 “BTS도 ‘아이돌’이라는 곡에 탈춤의 ‘얼쑤’ 할 때 하는 동작을 넣어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블랙핑크나 뉴진스 등도 선이 고운 한국무용 안무를 활용했으면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K팝 군무에 최승희 보살춤을 비롯해 한국무용 안무를 접목할 경우 한국무용이 더욱 대중화되고 글로벌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 1세대인 H.O.T.를 비롯해 젝스키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태어난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인 그는 K팝이 더 친숙해 걸그룹을 꿈꿀 만도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무용 신동으로 주목을 받으며 ‘원조 한류 스타’인 북한 무용수 최승희의 무용을 전수받았다. 부모님을 통해 접한 최승희의 보살춤에 매료돼 북한에서 1967년 최승희가 숙청될 때까지 17년 동안이나 무대에 함께 오른 최승희의 제자인 탈북 무용수 김영순에게서 사사했다. 그는 “북한 무용수다 보니 남한에 남아 있는 자료는 거의 없고 있다 해도 과연 정말 저게 최승희의 춤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원본에 대한 갈망으로 ‘최승희 춤 원본의 아우라’를 꼭 접해 계승·발전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부터 무용을 배우기 시작해서 만 6세던 2004년에 최연소로 최승희 무용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꼬마 무용수’를 사로잡은 최승희 춤의 매력은 경쾌한 음악과 스토리였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경쾌한 음악에 빠져들었는데 춤을 배우면서는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스토리와 서사를 담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며 “액운을 쫓는 등 목적이 있는 춤이 아니었다. ‘물동이춤’을 예로 들면 소녀가 물을 길러 가는데 샘물터에서 뻐꾸기를 만나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등 스토리 라인이 재미있었다”고 설명했다.
‘무용 신동’ ‘리틀 최승희’ 등으로 불리며 한국무용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그는 앞으로 한국무용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도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태평소 연주를 삽입하면서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성공 가능성이 이미 증명됐고 최근에는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BTS의 제이홉이 삼고무를, 지민이 부채춤을, 정국이 봉산탈춤과 북청사자놀음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슈가도 솔로곡 ‘대취타’를 선봬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그는 “한국무용이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지만 이제는 현대적으로 해석한 안무도 많이 나온 데다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한국무용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며 “한국무용의 글로벌화·대중화를 위해 계속해서 연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승희가 활동하던 당시 이미 한국무용은 세계에서 인기를 얻었고 그 역시 세계적인 무용 스타였다”며 “찰리 채플린, 피카소 등이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는 했다”고 덧붙였다.
중앙대에서 무용과 연극을 전공한 그는 동 대학원에도 진학해 최승희 춤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최근 ‘라반 Effort 이론에 기초한 배우 움직임 훈련의 한국무용 활용 방안 연구-최승희의 ‘보살춤’을 중심으로’라는 석사 논문이 통과됐다. 그는 “여전히 최승희 관련 자료는 희귀해 논문을 작성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찾을 수 있는 한 찾아본 자료만 100편은 될 것”이라며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 공연 ‘봄이 온다’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던 경험 역시 논문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