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제자리’ 日 임금 ‘꿈틀’…유니클로 40% 파격 인상

"급여 낮아 인재확보 경쟁 밀려"
3월부터 20년만에 첫 전면인상
물가급등에 캐논 등도 속속 올려
기시다 "대폭 인상" 압박도 한몫
고질적 디플레 탈출 여부 '관심'

11일 일본 도쿄에서 한 남성이 유니클로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30여 년간 제자리걸음을 해온 일본의 임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캐논 등 주요 대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나선 가운데 패션브랜드 유니클로는 최대 40% 파격 인상을 단행했다. 낮은 임금으로 글로벌 인재 경쟁에서 뒤처졌던 일본 기업들이 인상에 동참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에서도 탈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3월부터 일본 내 직원들의 연봉을 단번에 최대 4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물가가 40여 년 만에 최대 폭으로 급등한 점을 감안해 급여를 대폭 올려 인재 이탈을 막겠다는 의도다. 일본에서 근무하는 8400여 명의 임금이 10~40% 오르면서 총인건비는 15%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세부적으로 신입 사원 월급은 25만 5000엔에서 30만 엔(약 282만 원)으로 17.6% 인상되고 신임 점장은 29만 엔에서 39만 엔으로 34.5% 뛴다. 신문은 패스트리테일링이 2000년 전후에 현 급여 체계를 도입한 후 이처럼 전면적인 임금 인상을 단행한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바닥을 기던 일본의 임금이 꿈틀대는 명백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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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인상에 나선 것은 이 회사뿐이 아니다. 캐논은 새해 들어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체 직원 2만 5000명의 기본급을 7000엔 일괄 인상하기로 했다. 전자제품 판매 대기업 노지마도 기본급을 2만 엔 인상했다. 일본생명보험은 영업직 임금을 7% 올릴 계획이며 산토리홀딩스도 6% 높일 방침이다. 대형 플랜트 업체 닛키홀딩스도 4월부터 임금을 10% 인상할 계획이다. 맥주 회사인 아사히그룹과 기린·삿포로홀딩스 등도 임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앞다퉈 임금을 끌어올리는 것은 그동안 정체됐던 임금과 달리 물가는 뛰어 실질임금이 하락하며 근로자의 생활비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지난해 11월 실질임금은 전년보다 3.8% 감소하며 8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줄었다. 아소자키 요시노리 기린홀딩스 사장은 “물가가 오르는 와중에 사원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임금을 인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까지 기업에 임금 인상을 주문한 것도 기업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됐다. 기시다 총리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금이 매년 늘어나는 구조를 만들겠다”며 재계에 “올해 춘계 노사 협상에서 인플레이션을 넘는 임금 인상을 실현해달라”고 주문했다.


닛케이는 패스트리테일링의 파격 행보를 계기로 “낮은 임금으로 인재 쟁탈전에서 뒤처졌던 일본 기업들의 임금 인상이 확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 근로자의 연평균 임금은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큰 변동이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일본의 구매력평가환율(PPP) 기준 평균 임금은 2009년 3만 8300달러에서 2021년 3만 9700달러로 찔끔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은 6만 2700달러에서 7만 4700달러로, OECD 평균은 4만 6400달러에서 5만 1600달러로 껑충 뛰었다.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일본은행(BOJ)의 정책 목표 달성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BOJ는 지속적인 임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이 필요하다는 기조 하에 마이너스 기준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을 유지해왔다. 올 4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의 퇴임과 맞물려 BOJ가 돈줄을 조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의 임금 인상은 BOJ가 보다 수월하게 긴축에 들어갈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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