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병원에서 쓰이던 장비보다 해상도를 1만 배 이상 높인 자기공명영상(MRI) 기기가 가천대 길병원에 도입됐다. 알츠하이머 치매·파킨슨병 등 인류의 난제로 꼽히던 신경퇴행성질환의 조기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가천대길병원은 11.74T MRI 통합시스템 설치를 완료하고 오는 3월 세계 최초로 전임상시험(동물실험)을 추진한다고 12일 밝혔다. 11.74T MRI 개발은 보건복지부가 '노인성 뇌 질환 조기진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2014년 연구중심병원 R&D(연구개발) 지원 사업으로 선정한 프로젝트다. 길병원 자체 연구비 240억 원과 정부 지원금 260억 원 등 총 600여 억 원이 투입된다.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으로부터 180억 원 상당의 연구비를 지원받았고, 길병원도 180억 원을 투자했다.

길병원은 지난해 3월 MRI 시스템의 핵심 부품인 마그넷(Magnet)의 현장성능 평가를 마친 뒤 11월 기준 경사자장코일, RF코일, 전자기기, 전원공급장치 등을 결합해 11.74T MRI 통합 시스템 설치를 완료한 상태다. 오는 3월 원숭이·쥐 등 설치류·영장류 대상 동물실험 돌입을 앞두고 현재 전임상시험을 위한 최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길병원 뇌과학연구원이 이탈리아의 전문업체 ASG와 함께 마그넷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MRI 영상은 자석의 세기가 높을수록 선명해진다. 자석의 세기는 테슬라(Tesla) 단위로 구분하는데, 국내 병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사양은 3.0T MRI로 복잡한 인간의 뇌를 상세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초고자장 MRI로 불리는 7.0T가 2018년 기준 세계에 60대 나와있지만, 안전성과 가격 문제로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도 인간의 손·발·뇌 등 일부 촬영에 대해서만 허가한 상태다. 만약 동물시험에 이어 인체 대상의 임상시험까지 성공한다면 뇌의 심층부 질병을 확인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길병원은 11.74T MRI는 현재 병원에서 쓰이는 MRI 장비보다 해상도가 1만 배 이상 높다. 만약 동물실험에 이어 인체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뇌의 심층부 질병을 확인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11.74T급 MRI의 경우 미국이 미 국립보건원(NIH) 주도로 먼저 설치했으나 아직 이미지를 얻진 못했다. 프랑스 국립 연구소 뉴로스핀은 11.72T MRI 시스템에서 동물이 아닌 식물(호박)의 이미지만 획득한 바 있다.

이번 전임상 성과에 따라 우리나라가 세계 주도권을 가져올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길병원이 개발 중인 11.74T MRI는 세계 최초의 '동시 다채널-다핵종' 방식이란 점에서 차별화된다. 코일을 통해 인체의 신호를 획득하기 위해 여러 채널을 촬영하지 않고 동시에 다채널 이미지를 얻는데, 인체 수소(H) 원자 뿐 아니라 수소, 인, 나트륨, 코타슘, 칼륨 둥 여러 핵종을 통해 영상을 얻는 방식이다. 병원 측은 이러한 차별성을 기반으로 복수의 국가공인 기술가치 평가기관으로부터 약 1000~300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한국, 미국, 유럽, 일본 등에 특허를 등록했다. 7.0T MRI 시스템을 개발 중인 국내 기업에도 기술을 이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힘을 보탰다.

김우경 가천대길병원장은 “연구중심병원의 성과가 기술 사업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11.74T MRI 개발에 최종적으로 성공한다면 미지의 영역인 뇌의 비밀을 푸는 데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수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장은 "뇌 사진은 선명할수록 치매 등의 질환을 진단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11.74T MRI를 이용한 길병원의 동물실험이 매우 의미가 있다"며 "정부가 9년간 장기적으로 지원한 연구개발비가 효과를 내고 있어 향후 사업화 관련해서도 최상의 방식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