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촉발한 글로벌 물류 혼란은 ‘엔데믹’ 시대로 진입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과 수요 감소의 영향으로 공급망 병목이 해소되면서 급등했던 해상 운임이 급락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변동성 확대, 여전한 미중 무역 분쟁, 이상기후에 따른 공급 차질 등으로 공급망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공급망 혼란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팬데믹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 기업은 재고 최소화를 위해 시계열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생산 기지를 저비용 국가로 옮기면서 품질을 표준화했다. 이를 통해 기업이 얻고자 한 것은 비용 절감을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이었다. 역설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위해 기업들은 점점 더 복잡한 공급망 구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종전 공급망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전략이 오히려 위험을 키우는 원인이 됐고 위험 발생 시 복잡해진 공급망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팬데믹 이전과 다른 새로운 공급망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위험을 빠르게 파악하고 공급망을 유연하게 재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전략이 ‘디지털 전환’이다. 단순히 서류를 전자 형태로 바꾸고 공유하며 저장했던 수준을 넘어 전사적인 디지털 프로세스를 완성해야 한다. 또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원자재 수급과 생산이라는 공급망의 뒷단뿐 아니라 고객 접점의 시장 정보, 즉 공급망의 앞단까지 포괄해야 한다. 시장 정보를 통해 위기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계 기업들의 ‘협력’이 중요하다. 공급망의 모든 영역을 한 기업이 아우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자 잘하는 영역에 집중하고 협력을 통해 데이터를 연결해야 한다. 이에 더해 관계 기업들의 ‘공통선(共通善)’을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사례의 경우 생태계 파트너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심이 되는 플랫폼이 생태계의 공통선을 만들지 못하고 특정 기업의 이익을 향해 독주할 경우 결국 연결된 기업들의 협력을 얻지 못하고 디지털 전환에 실패했다.
최근 물류 업계에 다시 한 번 디지털 전환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번 열풍은 물류가 아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삼성SDS·KT와 같은 IT 업체들이 이미 ‘물류 플랫폼’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중 몇몇은 물류 플랫폼 구축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물류 기업들도 스스로 ‘플랫폼’이라 표현하면서 성장점을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진 공급망 혼란의 시대, 디지털 전환은 기업들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전략이 됐다.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뒷단과 앞단을 통합하고 고객이 있는 시장으로부터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관계 기업들의 협력과 공통선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을 적극 활용해 공급망의 가시성을 높이고 생산·물류·유통을 망라한 데이터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진정한 디지털 전환을 통해 불확실한 외부 상황에서도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급망 관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