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이상 사업장 사망 되레 늘고 기소 4.8% 그쳐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의 역설]
지난해 사망자 3.2% 증가 256명
처벌 피하기 급급·예방 취지 퇴색
법적용 사건 229건에 52건만 처리

소방구조대원들이 지난해 2월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 사고 현장에서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양주=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 법률이 27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 가운데 법 적용 사업장의 사망자 수가 되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와 관련한 수사 난도가 높은 데다 기업들이 법 취지인 사고 예방보다 처벌을 피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 27일부터 12월 31일까지 법 적용 사건은 229건 발생해 이 중 52건이 처리돼 22.7%의 사건 처리율을 기록했다고 19일 밝혔다. 52건 가운데 수사 담당 부처인 고용부가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34건(14.8%)이며 이 중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4.8%)에 불과했다. 2021년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사고의 고용부 송치율 63.7%와 비교할 때 수사 속도가 너무 느리다.


당초 중대재해법 도입 기대와 달리 사망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고용부가 이날 공개한 지난해 재해 조사 대상 사망 사고 현황에 따르면 전체 사고 사망자는 644명으로 전년 대비 39명(5.7%) 감소한 반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근로자 사업장의 사고 사망자는 256명으로 전년 보다 되레 8명(3.2%) 늘었다.


경영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사고 예방이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더 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근로자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기 때문이다.


수사가 더딘 이유로 범위가 넓다는 점이 꼽힌다. 중대재해법에서 요구하는 사고 인과관계를 확인하려면 수사는 해당 기업의 안전 보건 관리 체계 전반을 살펴야 한다. 중대재해법 사건 수사를 위해 피의자 조사는 1건당 평균 18회를 기록했다. 수사 과정은 수백 건의 서류 확인과 현장 조사도 필수다. 중대재해법 수사를 위한 압수 수색은 지난해에만 약 30건이 이뤄졌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고용부의 압수 수색은 연 평균 2건이었다. 고용부 내에서는 한정된 수사 인력으로 쏟아지는 사건을 감당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대재해법이 7년 이하 징역이 가능한 형사처벌법인 탓에 기업의 방어기제도 강하게 발동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은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지기 때문에 기업들이 쉽게 법 위반을 인정하지 않고 대부분 로펌을 선임해 대응한다”며 “수사 난도가 높아 수사관도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사건 수사가 느리다 보니 중대재해법 효과를 가늠할 법원의 첫 판결(1심)도 나오지 않았다. 법조계와 노동계에서는 사건 판례가 쌓여야 중대재해법의 안착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고용부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 방향을 사후 규제·처벌 중심에서 기업과 근로자의 ‘자기 규율 예방 체계’를 통한 사전 예방 위주로 바꾸기로 했다. 자율 영역이던 위험성 평가를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앞서 고용부는 11일 전문가로 구성된 중대재해법 개선 태스크포스를 발족했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발족식에서 “중대재해법은 입법 취지와 달리 법리적, 집행 과정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반발한다. 중대재해법은 기존 법 체계에서는 기업 안전을 책임지는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해 중대재해가 줄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과거 고용부는 법이 현장에 정착되고 사고 감축 효과로 이어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었다”며 “기업들은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어떤 의무를 다해왔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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