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 맞아요.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합니다."
38년간 돌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A(64·여) 씨가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을 면했다.
19일 인천지법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A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아무리 피해자인 딸의 어머니라고 해도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고 그 죄책이 매우 무겁다”면서도 “38년 동안 몸이 아픈 딸을 돌봤고, 딸이 대장암 진단 후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고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라며 "그동안 피해자와 함께 지내면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법원은 이번 사건이 A 씨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중증 장애인 가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 문제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이 오롯이 책임을 지고 있다”며 “이번 사건도 모든 잘못을 피고인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재판에 아들과 함께 나온 A 씨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법정 밖에 나와서는 소리 내어 울며 오열을 참지 못했다.
결심 공판 당시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검찰도 A 씨의 딱한 사정을 모르진 않았지만 살인 혐의를 적용한 이상 중형을 구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이번 사건의 양형기준상 권고형도 징역 4∼6년이지만 재판부는 이보다 낮은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도 하지 않는 집행유예 판결을 했다.
법원 관계자는 "A 씨의 경우 살인 혐의지만 정상참작으로 법정형에서 절반의 형이 감경돼 처단형의 범위는 징역 2년 6개월∼15년"이라며 "재판부가 처단형 범위 안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고 여러 사정을 고려해 집행유예 판결을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A 씨는 지난달 8일 결심 공판에서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제가 딸을 잘 돌봤어야 했는데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며 "죄가 너무 크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범행) 당시에는 버틸 힘도 없었다"며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울먹였다.
A씨가 딸 B(사망 당시 38세) 씨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딸은 난치성 뇌전증에 좌측 편마비가 있었고 지적장애까지 앓는 뇌 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었다.
엄마는 오히려 누구보다 극진하게 딸을 키웠다. 의사소통조차 힘든 딸의 대소변도 거의 매일 A 씨가 받았다.
A 씨 아들이자 B 씨 남동생은 법정에서 "어머니는 다른 엄마들처럼 항상 누나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고 이쁜 옷만 입혀서 키웠다"며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도 어머니가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38년간 이어지던 엄마의 지극정성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건 발생 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딸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A 씨 아들은 "어머니는 누나가 대장암 진단을 받자 많이 힘들어했지만 항암을 희망으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했다"면서도 "혈소판 수치가 감소하면서 항암마저 중단했고 누나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는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이때부터 A 씨는 몸무게가 많이 줄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말을 아들에게 하기도 했다. A 씨 아들은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며 "저와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