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앞다퉈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었던 지방자치단체가 금융당국과의 마찰을 피해 속도 조절을 택했다. 부산광역시는 2년 가까이 설립을 추진해오던 디지털자산거래소의 암호화폐와 증권형 토큰 거래를 보류하는 방향으로 한발 물러섰고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노렸던 인천시와 대구시는 사업 재구상에 나섰다.
부산시, 암호화폐·증권형 토큰 제외한 디지털상품거래소 출범
20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 추진위원회는 19일 첫 회의를 열고 암호화폐와 증권형 토큰을 제외한 비증권형 토큰 거래만을 지원하는 디지털상품거래소를 연내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추진위에 따르면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은 두 단계로 나뉘어 우선 비증권형 토큰 거래를 지원하는 디지털상품거래소를 설립하고 이후 암호화폐와 증권형 토큰 거래소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업계에선 당초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의 핵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증권형 토큰 등 암호화폐 거래 지원이 보류된 데에는 금융당국과의 갈등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간 금융위원회는 관련 규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을 서두르는 부산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와 FTX 파산 등 연달아 터진 해외 거래소 리스크도 기름을 부었다. 금융위와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해 9월 작성한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 지원요청 관련 검토 안건’에서 해외 규제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이들 거래소가 규제 특례방식으로 국내 영업을 시작하거나 부산시와 공동거래소를 설립할 경우 자금 세탁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이들 거래소의 한국 시장 진입에 대한 당국의 경계가 높은 상황에서 오더북 공유 등 협업을 고집하며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추진위의 정무적 판단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 추진위원을 역임 중인 서병윤 빗썸 경제연구소 소장은 “증권형 토큰과 해외 거래소와의 오더북 공유 등에 대한 규율 체계가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와 정부 부처 사이에서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괜히 오해 사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일반적인 원칙만 지키면 되는 비증권형 토큰을 먼저 해보자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뀐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갈등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직접적인 소통 채널도 마련했다. 부산시는 최근 블록체인 정책 담당관에 금융위 국장급 인사인 손성은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장을 임용했다.
당초 계획에서 한발 물러난 인천·대구
부산시와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인천시와 대구시도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우선 대구시는 지난해 중순 발표한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신산업 육성 정책의 핵심이었던 의료 블록체인규제자유 특구 지정 추진 계획을 철수했다. 정부가 이미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된 부산시 외에 다른 블록체인 특구를 새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당초 의료 블록체인에 특화된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특구 지정이 힘들어지면서 사업 방향을 바꿨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다양한 기업들을 유치하고 이들의 가상자산사업자(VASP) 실증 지원 등 초기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것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소의 경우 부산시처럼 직접 설립하기보다는 이미 서비스하고 있는 거래소를 유치해서 은행 실명계좌 발급을 통한 원화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인천시는 규제자유 특구 지정에 수도권은 제외하는 현행법에 부딪혀 블록체인 특구 지정 추진을 멈췄다. 이후 ‘블록체인 허브도시’ 사업을 준비하며 블록체인 혁신도시 발전 계획을 세웠지만 지난해 말 예산이 크게 삭감되며 사업이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후에 협의를 통해 삭감된 예산을 다시 확보해 예산 수립을 해놓은 상황”이라며 “올해 상반기 허브도시 사업 마스터플랜 용역을 시행해 4개년 중장기 계획을 세우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