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반 년 넘게 공사가 멈추며 분양보증 사고가 발생했다. 분양보증 사고가 난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지방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앞으로 분양보증 사고가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HUG 영남관리센터는 이달 17일 대구 달서구 ‘장기동 인터불고 라비다’ 사업장에 대한 분양보증 사고 처분을 결정하고 분양 계약자에게 안내문을 전달했다. 사고 금액은 약 408억 원(148가구)이다.
분양보증은 HUG가 주택 분양을 이행하거나 분양 계약자가 납부한 계약금 및 중도금의 환급을 책임지는 보증 상품으로 시행사·시공사 등 사업 주체가 파산 등의 사유로 분양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 분양보증 사고가 발생한다.
분양보증 사고는 부동산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보증 사고 금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조 7309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바 있다. 이후 2018년 340억 원으로 줄었지만 2020년 1678억 원으로 다시 늘었다. 그러나 2021년 이후 분양 시장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사고 사업장이 나오지 않았다.
장기동 인터불고 라비다는 실행 공정률 93.8% 상태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6개월 이상 공사가 중단돼 분양보증 사고 사업장으로 처리됐다. 사업 시행사가 자금난 등을 이유로 시공사 측에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 것이다. 주상복합아파트인 이 단지는 2017년 10월 입주자 모집 공고 당시 2021년 4월 입주를 목표로 했지만 현재까지 1년 9개월가량 입주가 지연된 상태다.
HUG는 이번 사고 사업장에 대해 ‘분양이행’을 진행할 예정이다. HUG가 시행사 지위를 넘겨 받아 승계 시공사를 선정한 뒤 공사 진행과 입주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HUG 관계자는 “실행 공정률 80% 이상인 사업장의 경우 계약금·중도금 환급 이행이 아니라 분양 이행을 하도록 돼 있다”며 “잔여 공사를 완료해 입주 및 소유권 보존 등기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HUG, 보증 사고위험 18곳 관리
2021년 10곳서 늘어 2배 증가
대구 달서구 ‘장기동 인터불고 라비다’ 신축 현장에서 발생한 분양보증 사고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전국의 부실 사업장들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올해 전국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위험선’을 넘어서면서 이번 보증 사고를 신호탄 삼아 한동안 잠잠하던 분양보증 사고가 줄줄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일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사업장 1592곳 중 보증 사고 위험이 있는 사업장은 18곳(관리 단계 3곳, 경고 단계 15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HUG는 분양보증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상·관찰·주의·관리·경보 등 5개 단계로 구분해 보증 사고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관리’ 또는 ‘경보’ 단계에 있으면 보증 사고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통상 분양보증 사고는 관리·경보 단계에서 1년 이상 경과한 경우 발생한다.
이는 2021년 10곳(관리 5곳, 경보 5곳) 대비 약 2배 증가한 수치다. 관리·경보 단계 사업장은 2018년 12곳(관리 3곳, 경보 9곳)에서 2020년 5곳(관리 2곳, 위험 3곳)으로 줄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늘고 있다. 이들 사업장은 계획 공정률 대비 실제 공정률이 많게는 25%포인트 낮은 곳이다.
또 HUG는 정상 단계를 제외한 관찰 이하 단계 사업장은 부실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 공정률·분양률 제고 촉진, 입주금 관리 등 단계별 조치를 취한다. 관찰 이하 단계 사업장 수는 2020년 38곳에서 2021년 80곳, 2022년 10월 말139곳으로 늘었으며 전체 사업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5.4%, 지난해 10월 말 8.7%로 급증했다.
장기동 인터불고 라비다의 경우 6개월 넘게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며 17일 분양보증 사고 사업장으로 처리됐다. 현재 실행 공정률 93.8%로 완공을 앞둔 상황에서 시행사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시공사가 공사를 중단한 것이다. 대구 달서구청 관계자는 “시행사 자금 상황에 따라 공사 진행과 중단을 반복하며 입주 일정이 늦어지면서 민원이 발생했던 사업장”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번 사고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분양보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금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분양 아파트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분양 대금을 통해 수익을 내지 못하는 지방 영세 사업장을 중심으로 보증 사고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5만 8027가구로 정부에서 판단하는 위험선인 6만 2000가구에 육박했다. 미분양 물량은 대구(1만 1700가구)와 경북(7667가구), 경기(7037가구), 충남(5046가구) 등 지방에 몰려 있다. 12월 말 기준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최근 미분양 증가 추이를 고려할 때 6만 가구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분양 초기 계약률도 저조한 상황이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국 민간아파트 초기 분양률은 82.3%로 2019년 1분기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초기 분양률은 아파트 분양 초기(분양 개시일 이후 3개월 초과~6개월 이하) 시점의 총 분양 가구 대비 계약 체결 가구 비율을 의미한다. 특히 초기 분양률 100%에 달하던 서울도 92.7%로 내리며 미분양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대책 마련을 추진 중이다. 이달 초 부동산 규제 지역 해제와 전매 제한 완화, 실거주 의무 폐지 등 규제 완화에도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 추가적인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우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민간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LH 내부 규정을 손질해 매입임대 사업을 위한 주택 매입 대상에 미분양 아파트를 포함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조정 대상 지역 외 미분양 아파트는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미분양 매입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정부는 미분양 우려가 컸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LH를 통해 미분양 아파트 7058가구를 사들인 바 있다. 미분양 매입과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은 재정 여건, 임대 수요, 지역별 상황과 업계 자구 노력 등을 고려해 그 수준·시기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