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마을에 생기는 文책방…다른 前대통령 사저는?[정상훈의 지방방송]

<25>경남 양산…文정부 인사 포럼 ‘사의재’ 출범
중앙 정치권 리더십 부재 속 정치적 영향력 여전
盧 봉하마을 연상도…安이 찾은 MB, ‘달성’은요?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지난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단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본인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조그마한 책방을 낸다고 합니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로 유명했고 본인의 SNS를 통해 다양한 책들을 소개했던 문 전 대통령이라 당연한 행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디 정치권이라는 것이 사람이 숨 쉬는 것만 가지고도 해석하고 풀이하고 셈법하기를 좋아하는 곳인지라, 문 전 대통령의 ‘책방 행보’를 놓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퇴임 이후 ‘잊힌 삶’을 살겠다고 했던 문 전 대통령은 지금도 여전히 중앙 정치권에 꾸준히 소환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새해 첫 일정으로 평산마을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 대표를 중심으로 민생경제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치권에선 또 ‘단일대오’를 주문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이름이 오르내릴수록 평산마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퇴임하며 기존에 머물던 양산 매곡마을 대신 평산마을을 사저로 택했습니다. 국회의원 지역구로 따지면 경남 양산을에서 양산갑으로 옮긴 셈입니다. 문 전 대통령과 함께 내려온 불청객, 보수 유튜버들과 이로 인한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 경호구역 확대까지 한동안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잊히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대통령을 전 직업으로 둔 사람의 숙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정책 포럼 ‘사의재(四宜齋)’의 출범도 이 같은 영향력의 연장선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18일 출범한 사의재에는 문재인 정부 장·차관을 지냈거나 청와대에서 근무한 인사 300여 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의재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며 대안 정책을 제시하는 민간 싱크탱크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과 분석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대안 정책을 개발하는 활동을 펼치겠다는 방침입니다. 현 정부의 ‘전 정부 지우기’에 대한 대응도 주요 활동 영역에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사의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 친문(親文) 의원들의 새로운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실제 사의재에는 고민정·도종환·박범계·윤영찬·정태호·한병도 등 문재인 정부 출신 현역 의원들도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일각에선 여전한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현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에서 찾기도 합니다. 국론은 물론 여당 내 민심마저 양쪽으로 나누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 검찰의 수사 공세 속에서 확장성을 보이지 못하는 이재명 대표. 그 사이에서 비록 정권은 내줬지만 40%대 지지율로 퇴임한 문 전 대통령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문 전 대통령의 명절 선물(거제멸치)은 이번 설에도 주요 야권 인사들의 SNS를 도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정권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MB 정부와 대비되며 봉하마을은 사람들의 찾아들었고, 검찰의 표적이 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서 보낸 시간은 1년여 남짓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떠난 지 14년이 지난 지금도 봉하마을은 민주당의 성지(聖地)로, 김해의 주요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복권 없는 사면이 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출소 후 가장 먼저 찾은 곳도 봉하마을이었습니다.


진보 진영에게는 봉하마을과 평산마을이 있지만, 보수 진영에게는 구심점 역할을 해줄 ‘기댈 곳’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DJ(김대중)의 동교동과 함께 한국 정치의 뿌리 역할을 한 YS(김영삼)의 상도동 이후 사실상 맥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살던 연희동에는 군사정권의 잔상이 강했습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이 전 대통령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 의원, 이 전 대통령, 안 의원 경선캠프 선대위원장인 김영우 전 의원. 안철수 의원실 제공

그런 와중에 최근 논현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신년 특별사면을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곳입니다. 이 전 대통령 복귀 당시 친이계 좌장이었던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비롯해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이 MB의 복귀를 맞이했습니다. 친이계는 윤석열 정부 요직에도 포진돼 있습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0일에는 당권 도전을 선언한 안철수 의원이 논현동을 찾았습니다. 외연 확장 차원이면서도 MB의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사면·복권되며 서울 삼성동 사저가 아닌 본인의 예전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군으로 돌아왔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저 복귀 이후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 차 국회를 찾은 게 거의 유일합니다.


달성 사저를 방문한 이들도 극히 드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찾은 바 있지만 과거 특검과 피의자 신분으로 만났던 인연, 그리고 지방선거 개입 논란 등 부정적인 면이 더 주목받았습니다. 지금은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만이 간간히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보수 진영에선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입니다. 국민의힘 계열에서 그만한 팬덤을 가진 정치인도 드뭅니다. 그런 달성 사저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 날이 온다면, 어쩌면 보수 진영의 새로운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학창시절에 ‘지방방송 꺼라’는 말 좀 들은 편입니다. 수업시간에 많이 떠들었단 뜻이겠죠. 그때 다 하지 못한 지방방송을 다시 켜려고 합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