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저축은행들이 내준 민간 중금리 신용대출 규모가 직전 분기 대비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중금리대출은 신용점수 하위 50%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지만 취급 건수는 10만 건에도 못 미쳤다. ‘서민금융기관’을 자처한 저축은행이 정작 금리 상승기에 서민금융 공급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저축은행중앙회 소비자포털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 저축은행들의 민간 중금리대출 공급액은 총 1조 5084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2분기(3조 3733억 원), 3분기 실적(3조 1516억 원)과 비교하면 각각 50% 넘게 급감했다. 같은 기간 취급 금액뿐 아니라 건수도 약 19만 건에서 9만 건으로 ‘반 토막’ 났다.
일부 저축은행의 경우 4분기부터 중금리대출을 아예 중단하거나 직전 분기 대비 80~90%씩 축소했다. IBK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매 분기 100억 원 이상씩 중금리대출을 내줬지만 3분기 들어 90억 원대로 줄였다가 4분기에는 취급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애큐온·HB·진주 저축은행의 4분기 중금리대출 공급액도 직전 분기 대비 90% 이상씩 쪼그라들었다.
자산 규모 상위사들도 서민대출인 중금리대출을 줄이기는 마찬가지다. 자산 규모 상위 5개사(SBI·OK·한국투자·웰컴·페퍼)의 지난해 4분기 중금리대출 공급액은 3분기(1조 4700억 원)보다 46.1% 급감한 약 7900억 원에 그쳤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을 제외한 4개사의 취급 규모가 모두 크게 줄면서다. 이 기간 웰컴저축은행과 페퍼저축은행의 취급 실적은 절반 넘게 축소됐다.
저축은행업에서는 조달 금리 상승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중금리에 힘쓰는 것이 저축은행 본연의 정체성은 맞다”면서도 “대내외 환경 악화로 조달 비용이 높아지는 와중에 법정 최고금리, 중금리 상한선이 있다 보니 중금리에 집중하기에는 수익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의 인센티브가 미미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앞서 금융 당국은 중금리대출 활성화를 위해 금리 상한을 지난해 상반기 16%에서 하반기 16.3%, 올해 상반기 17.5%로 꾸준히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금리 상한선을 올려주기는 했지만 업계에서 체감하는 조달 비용은 적게는 3~4%포인트, 많게는 5~6%포인트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다만 업권 밖에서는 저축은행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저축은행들이 비단 민간 중금리대출만 축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근로자햇살론 등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금융 상품도 사실상 취급을 중단했었다. 일부 저축은행은 대출 중개 수수료를 두고 대출 비교 플랫폼사와 갈등을 벌이며 외부 대출 신청 창구도 걸어 잠근 상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저축은행 업권에서 불법 작업대출, 횡령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정작 서민금융 상품 개발이나 공급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도 서민금융 상품 공급 활성화를 주문하고 나섰다. 이세훈 금융위 사무처장은 16일 서민금융 현황 점검회의에서 “최근 시중금리 상승으로 서민·취약계층의 금융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인 만큼 특히 저축은행·여전사·대부업 등 서민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서민금융 지원 역할이 중요하다”며 “리스크 관리나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등 시장 여건 변화에 따른 위험 부담을 금융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하는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