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중에서 연금 개혁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급여 수준과 보험료를 조정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지만 전 정부에서는 외면했던 과제다. 과연 연금 개혁은 현재 시급한 과제인지, 그렇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개혁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연금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과연 국민연금 기금은 고갈될 것인가’이다. 1988년 출발한 국민연금제도는 국민의 가입을 유도하고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설계됐다. 출범 이후 노후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화라는 상충되는 두 목표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를 제외한 모든 정권이 국민연금제도를 손질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국민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낸 돈보다 더 많이 받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기금의 고갈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을 앞당기는 한국 경제의 암초가 있는데 그것은 저출산·고령화와 최근의 물가 상승이다. 한국 인구 구조의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받아가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 차이가 앞으로 더 크게 벌어지게 된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은 물가에 연동돼 있기 때문에 최근의 가파른 물가 상승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을 앞당기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물론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연금의 적립금은 비상시를 대비하는 수준으로 유지하고 국민연금 보험료와 세금으로 매년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 방식으로 연금제도의 운용을 전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과 방식으로의 전환은 한국의 미래 세대에 엄청난 조세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기금 방식으로 국민연금제도를 운용한다면 기금이 고갈되기 전에, 아니 주식·채권 또는 부동산 등에 투자돼 있는 기금 소진의 충격이 한국의 자산 시장에 혼란을 야기하기 전에 연금을 개혁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최근 한 언론사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42%가 연금제도의 현행 유지를 선호한다고 답변했다고 하는데 이 응답자들이 명약관화하게 다가올 연금 기금 고갈의 충격을 이해하고 답변했는지, 아니면 응답자 본인들은 연금 고갈이 되기 전에 사망·이민 등의 이유로 한국의 연금제도와 무관하게 된다고 예상해 답한 것인지 궁금하다.
국민연금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연금 재정 안정화를 이루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과 OECD 회원국 연금제도의 평균 소득대체율 51.8%에 못 미치는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고려하면 연금제도를 통한 노후 소득 보장 강화도 중요하다. 양립하기 힘든 연금 재정의 안정화와 노후 소득 보장 강화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연금 수령 연령 상향 등 현재 세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보인다. 국민연금제도의 개혁이 현재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은 연금 개혁을 좋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경제학의 관점에서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최근 프랑스도 부채에 의존하는 연금제도를 운용할 수 없기에 연금 수령 연령 상향과 근속 기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의 희생을 싫어하는 국민들의 저항을 받고 있지만 프랑스 마크롱 정부도 지금 연금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에 대규모 증세 또는 연금 수령액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인기 없는 연금제도 개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를 생각한다면 현재 한국 연금제도의 문제는 프랑스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지난 5년 동안 방기됐다가 다시 화두가 된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문제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잘 알리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바탕을 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개혁의 첫 번째 단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