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기세가 꺾이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사그라들면서 신흥국 투자 펀드(주식형·채권형)에는 일주일 만에 15조 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증권가는 올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되면서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며 중국·대만·한국 등 아시아권 시장을 눈여겨볼 것을 조언했다.
25일 미국 금융 정보 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이달 12일부터 18일까지 신흥 시장 주식형 펀드로 102억 달러(약 12조 5000억 원)가 유입됐다. 2021년 둘째 주 이후 최대 유입량이다. 신흥 시장 채권 펀드에도 25조 1000억 달러(약 3조 1000억 원)가 유입됐는데 101주 만에 최고치다. 같은 기간 선진 시장 주식형 펀드에서 26억 6000만 달러가 순유출된 것과 대조적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과 글로벌 신흥 시장(GEM)에 각각 61억 8000만 달러, 44억 3000만 달러가 순유입됐다. 특히 중국 주식형 펀드로 유입된 자금 규모는 51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인도 주식형 펀드에는 최근 4개월 만에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됐다. 국내 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서도 연일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달 들어 이틀만 제외하고 모두 순매수 랠리를 펼쳤다. 올해 들어서만 5조 203억 원어치 넘는 주식을 쓸어 담았다. 이날에만 9222억 원을 순매수하며 올 들어 일별 최고 매수액을 기록했다.
미국 달러 대비 신흥국 통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이들 지역에 자금이 쏠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말 이후 선진국(DM) 대비 신흥국(EM)의 상대 성과가 개선되고 있다”며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완화하면서 달러인덱스는 하락하는 반면 중국과 대만·한국 등 신흥국의 통화는 절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완화하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된 점도 신흥국 주식의 투자 매력을 높인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종금리가 5.0% 수준이라는 게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비교적 하이 리스크인 이머징 마켓의 채권형 펀드도 단기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증권가는 올해 신흥국 증시가 선진국 증시보다 부각되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와 연준의 통화 긴축 속도 조절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달러가 다시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신흥국 시장의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강 연구원은 “선진국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지난해 3월 이후 10개월 연속 하락 중인 반면 신흥국 제조업 PMI는 기준선(50)에서 등락하고 있다”며 “올해 신흥국 증시 아웃퍼폼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특히 신흥국 중에서도 중국·한국·대만 등 아시아 지역의 투자 매력도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아시아 지역은 다른 신흥국보다 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내수가 견조하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지난해까지 원자재 수출 중심의 국가가 투자 안전지대였지만 올해는 원자재 가격 급등 수혜가 줄어들 것”이라며 “대신 중국과 대만·한국 등 상품을 수출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선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 역시 “한국 시장 입장에서 달러 약세는 최대 호재”라며 "경기 침체에서 회복되고 있는 아시아 시장의 투자 매력이 미국 시장보다 높아 머니무브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에 가장 민감한 우리 증시의 상대적 매력이 부각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다만 외국인들의 머니무브로 코스피지수가 과속 상승하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연준이 기대와는 달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이어가거나 실적 시즌에서 어닝 쇼크의 강도가 예상보다 높을 경우 실망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초 2210선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코스피지수는 한 달도 채 안돼 8.59% 급반등해 이날 2420선을 돌파했다. 조창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달 증시가 반등하는 이유는 펀더멘털(기초여건)보다 외국인 수급에 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상단을 제약할 수 있는 요인은 기업 이익”이라며 “이익 추정치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