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 궁정의 수석 화가 샤를 르브룅은 1661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무릎 꿇은 페르시아의 왕비들’을 제작했다. 로마의 역사가가 남긴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기록을 기반으로 그려졌기에 이 그림은 역사화로 분류된다. 이수스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의 군주 다리우스 3세가 황급히 도주한 후 적진에 남겨진 그의 가족들이 알렉산더를 만나 자비를 청하는 장면이 이 작품 속에 묘사돼 있다.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의 오랜 친구이자 참모였던 헤파이스티온이 먼저 페르시아 왕비들의 거처를 방문했다. 적장의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는 상관의 약속을 전달하러 온 그를 다리우스 3세의 어머니는 알렉산더로 오인했다. 그의 발밑에 엎드려 가족의 안위를 간청하던 다리우스 3세의 어머니는 잠시 후 도착한 알렉산더를 보고 자신이 큰 결례를 범했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그도 알렉산더입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이들을 정중히 예우했다.
르브룅에 의해 구현된 이 그림의 주제는 적을 포용하는 지도자의 관용 정신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이 이야기는 수차례 그림의 주제로 활용됐으나 특히 이 작품은 매우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루이 13세의 뒤를 이어 네 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군주의 자리에 오른 루이 14세는 오랜 기간 어머니 안 도트리슈와 마자랭 추기경의 섭정을 받았다. 그런 그가 1661년 정치적 스승인 마자랭이 사망하자 궁정 귀족과 관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직접적인 통치를 선포했다. 54년간 지속된 태양왕 루이 14세의 시대가 시작되던 이 해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르브룅의 그림 속에서 양팔을 벌리고 화해와 포용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젊은 알렉산더의 모습은 루이 14세의 정치적 비전을 대변한다. 어린 시절 두 차례에 걸친 귀족들의 반란을 겪었으나 루이 14세는 그들의 지지와 도움 없이 안정적인 국가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적을 끌어안는 넓은 도량으로 협치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루이 14세의 정치철학이 이 그림 속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