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인사이드] 찰나의 만남에도…'골든타임' 지키려 분초 다투는 응급실 24시

◆박성준 고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급성 심근경색 등은 골든타임 4분
한해 1000만명 내외 환자들 방문
제때 치료 못받아 안타까운 상황도
시술 전에 진료과간 긴밀한 협진
우수한 의료체계가 생존율 높여

"헬프 미!"


2019년 10월 이른 아침. 119 종합상황실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외국인 여성이 “남편이 샤워 중 쓰러졌다”며 울부짖었지만 영어가 원활하지 않아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119 상황요원은 위치정보시스템(GPS)과 호텔명을 물어 신고자의 신원을 파악했다. 구급대원이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15분. 다니엘 나파르(66)씨가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고려대구로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심정지로 맥박이 느껴지지 않고 자발호흡이 없는 상태였다.



◇ 심정지로 응급실 실려온 佛 환자, 20% 가능성에도 포기 안한 의료진

박성준 고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달려가 기관 내 삽관(intubation)을 통해 기도를 확보하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혈액검사 결과 혈액 내 칼륨 수치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져 있었다. 당뇨병성케톤산증(DKA·Diabetic Ketoacidosis)에 의한 고칼륨혈증(hyperkalemia)이 추정됐다. DKA는 사망에도 이를 수 있는 당뇨병의 급성 합병증이다. 설상가상 혈압이 심하게 떨어지면서 소변량도 급격히 줄었다. 전해질 이상을 빠르게 교정하려면 투석이 시급한데 나파르 부인은 프랑스어로만 소통이 가능했다. 통계적으로 심정지 상태에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의 78.6%는 사망 또는 가망없는 퇴원의 경과를 보인다. 당시 의료진 판단에도 나파르씨의 소생 가능성은 20% 남짓이었다. 동료 의료진의 기지로 영사관에 연락을 취해 통역사와 연결이 닿았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절규하는 나파르 부인을 다독이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자"는 말을 건넨 게 박 교수의 마지막 기억이다.



박성준 고려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심정지로 내원한 프랑스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했을 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려대구로병원

그로부터 두 달 가량 지났을까. 홍보팀 직원으로부터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내 생명을 구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라파르 부부의 영상을 전달 받고서야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고 후유증 없이 컨디션을 회복해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갔음을 알게 됐다는 박 교수. 그는 "바쁜 응급실 일상을 보내다 보면 문득 '그날 중환자실로 보냈던 환자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며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환자들은 병력을 파악하기 조차 어려워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영상 속 건강한 모습에 반가웠다"고 전했다.



◇ 적게는 2시간, 길면 하루밤 머무는 응급실…"골든타임에 사활"

한해 1000만 명 내외의 환자들이 전국 응급실을 찾는다. 나자르 씨처럼 샤워 도중 쓰러져 알몸으로 실려오는 환자부터 불의의 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환자, 겉모습은 멀쩡한데 심장이 멎은 환자에 이르기까지. 1983년 개원 이래 서울 서남부 권역의 최상위 의료기관으로서 지역사회 건강을 지켜온 고대구로병원은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선정됐다.



퇴원을 앞둔 나파르씨 부부와 고대구로병원 의료진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제공=고대구로병원


환자가 응급실에 머무는 시간은 대부분 6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절반 가량은 2시간 이내 떠난다. 그만큼 시급을 다투는 상황이 많다. 급성 심근경색이나 부정맥이 심장마비나 심정지로 이어졌을 때 골든타임은 고작 4분. 그 안에 CPR이 시행돼야 심각한 뇌손상을 막고 사망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겨울철 빈도가 잦은 뇌출혈과 뇌경색의 골든타임은 3~6시간. 시술 준비 시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3시간 이내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환자들과 짧은 순간 대면하는 만큼 ‘조금만 빨리 왔다면 살릴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도 크다. 박 교수는 "소수의 경증 환자를 제외하곤 근본 원인을 찾아 해당 진료과에 의뢰하고 수술실 또는 중환자실, 병실 등으로 빨리 올려 보내는 게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주된 임무"라며 "진료과 간 긴밀한 협진은 물론 병원 전 단계를 아우르는 응급의료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야 중증 응급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성준 (가운데) 고려대구로병원 교수가 구로소방서 구급대원들과 함께 재난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려대구로병원

박 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경기 내 14개 재난거점병원 중 하나인 고대구로병원의 재난책임자로 선임되어 병원 전 단계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도 힘쓰고 있다. 병원 근무 중 틈틈이 구로소방서 구급지도의사로서 소방일지를 검토하고 구급대원 대상 정기 훈련 및 교육도 진행한다. 그는 "재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 없다"며 "어떠한 재난이나 대량 인명 사고에도 의료적 역량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대응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메디컬 인사이드’ 코너는 보건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의료진과 병의원의 활약상을 전달하는 연재물입니다. 임상연구·개발과 진료 등의 영역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의료진과 만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의료기관 내 다양한 진료과와 부서 차원의 협력을 통해 의료계 변화를 선도하는 센터를 직접 찾아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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