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는 “졸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숨 가쁘게 전개되는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얘기다. 단거리 경주처럼 0.1초를 다투는 경쟁이어서 잠시 삐끗하면 망한다. ‘글로벌 정글’에서는 최고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최대 빅매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이다.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국 간의 힘겨루기인 ‘투키디데스 함정’에 비유되는 미중 패권 전쟁의 최종 승자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당초 서방의 싱크탱크들은 2030년 전후에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0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넘긴 중국이 연평균 5% 안팎의 성장률을 지속하는 반면 미국의 성장률은 2% 이하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 해미시 맥레이는 저서 ‘2050 패권의 미래’에서 1820년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최대 비중(33%)을 차지했던 역사를 상기하면서 “2030년쯤 중국이 세계 1위를 탈환할 것”이라고 점쳤다.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소도 “중국이 2030년에 경제 규모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변곡점을 맞고 있다. 포린폴리시의 칼럼니스트 하워드 프렌치는 지난해 칼럼에서 중국의 노동인구 감소와 생산성 향상 둔화 등을 들어 “가라앉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영국의 캐피털이코노믹스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 중국의 지난해 성장률이 3.0%에 그쳤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피크 차이나(Peak China)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 근거로 인구 감소 외에도 미국의 기술 통제에 따른 중국 첨단 산업의 성장 둔화 등이 거론된다. 두 강대국의 최고 사령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각각 중국과 미국을 경계하는 전략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와 맞물려 글로벌 반도체 대전(大戰)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반도체가 ‘게임체인저’라고 판단한 미국은 한국과 대만 등에 넘겨줬던 생산능력을 미국 본토로 유턴시키고 있다. 또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미국 의회는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25%의 세액공제 혜택과 대규모 보조금 지급 등을 담은 반도체·과학법을 지난해 통과시켰다. 대만은 새해 들어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법안을 처리했다. 중국과 일본·유럽연합(EU)도 ‘반도체 제국’ 진입을 노리면서 지원 법안 또는 대규모 보조금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반도체 밀림’에서 살아나려면 우리 기업들의 모래주머니 제거와 세제·예산 등의 전방위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지원은 제자리걸음이다. 국회는 지난해 말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6%에서 고작 8%로 올렸을 뿐이다. 그 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추가 상향 조정 지시에 따라 세액공제율을 15%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재벌 감세”라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이러니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지난해 4분기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10배 이상 되는 영업이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산업이 도태된다면 한국 경제에는 미래가 없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권은 포연이 자욱한 경제 전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우물 안에서 권력 싸움만 벌이고 있다. 입법권을 쥔 거대 야당은 외려 국정 발목 잡기로 방해하고 있다. ‘이심(李心·이재명 대표 의중) 눈치를 보면서 사법 리스크에 처한 이 대표 ‘방탄’에만 올인하고 있다. 집권당은 당권 싸움에만 매몰돼 있다. 친윤계 인사들이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을 들먹거리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바람에 전당대회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과거 ‘진박’ 논란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윤 대통령부터 ‘공정하고 중립적인 경선 관리’를 주문해야 한다. 전략 산업을 살려내야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 가능하고 국민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여야가 싸울 때 싸우더라도 미래와 국익을 위해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스크럼을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