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평구에는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의 군수물자 공장인 미쓰비시 제강 인천제작소의 노동자들의 공장 합숙소로 사용된 ‘미쓰비시 줄사택’이 있다. 이 곳에 머물며 일한 노동자 대부분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으로 추정되기에, 줄사택은 당시 노동자의 생활상을 확인시키는 문화유산으로 평가 받는다. 이 곳 재개발을 모색하던 부평구는 ‘미쓰비시 줄사택’의 보존으로 방향을 틀어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기로 했다. 반면, 같은 부평구 내 ‘산곡동 영단주택’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강제 동원자들이 포함된 군수업체 노동자에게 보급한 공동주택이라는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지만 별다른 보존 대책이 없었다.
문화재청은 이처럼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미래 역사문화자원’을 파악하고자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미래 역사문화자원인 비지정문화재를 향토유산으로 관리·활용하기 위해 권역별로 역사문화자원을 조사하고 체계적 보호·관리·활용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문화재 정책은 문화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보호문화재를 선정·지정하는 ‘문화재 중점보호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이에 포함되지 못한 비지정문화재와 역사문화자원을 포함해 미래유산까지 아우르는 ‘역사문화자원 포괄적 보호체계’로 보호·관리·활용 방안을 정비하기 위한 의도다. 문화재가 아니어도 문화재에 근접한 가치를 갖는 유산의 존재와 의미를 문화재청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내년까지 총 5년간 진행하는 전수조사 사업에 233억원의 예산이 배정됐고, 올해는 약 31억원이 집행될 예정이다. 사찰이나 석탑과 비석, 절터와 고분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근대 유산으로서 오래된 정미소나 미용실 등도 고려 대상이다. 5년의 조사가 완료되면 전국에서 약 6만 건의 미래 역사문화자원을 확보할 것이라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문화재청의 비지정문화재의 현황 전수 조사에 의해 지난 3년간 대구·경북·강원 지역 1만4248건, 서울·인천·경기 지역 1만2343건, 부산·울산·경남·충청 지역 약 1만8000건 등 약 4만4500건의 비지정문화재가 파악됐다. 올해는 광주·전남·제주 지역, 내년에는 전북·대전·세종 지역의 비지정문화재를 조사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의 정책 관계자는 “미래 역사문화자원에 포함됐다고 하여 문화재보호구역처럼 개발 제한 등의 규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조사를 마치는 대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지정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며,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지정문화재를 향토유산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근거 법령 마련을 위한 연구를 실시해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사례로 본 인천 ‘산곡동 영단주택’의 경우 재개발에 따른 철거를 앞두고 있지만 비지정문화재로서 미래유산의 가치는 인정받았다. 이에 2021년부터 인천 부평역사박물관이 관련 조사를 통해 철거 전 모습의 사진기록, 건축·실측 조사와 관련자 구술 채록 등을 진행했고 지난해 말 학술 총서를 발간했다. 건물이 비록 사라지게 될지라도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기록물로 남겨놓는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