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혁명이 온다] AI 넘는 '게임체인저' 기술인데…韓 양자 연구자 500명도 안돼

<상> 디지털 강국 韓, 양자는 걸음마 단계
美 양자컴퓨터 기술력 세계 최고
中은 양자암호통신서 앞서나가
日·유럽도 전략기술로 집중투자
韓, 올 예산 늘렸지만 984억 불과
일부 기업들도 소규모 투자 그쳐
국방·우주처럼 전략적 육성 필요




“우리가 디지털 강국이지만 반도체·인공지능·배터리·우주·국방 등 경제·안보에 파괴적 혁신을 꾀할 양자(퀀텀) 분야는 후발 주자로 실상 불모지나 다름없죠. 십수 년 뒤를 보고 캐나다 퀀텀밸리처럼 양자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실제 캐나다 워털루대는 세계적 수준의 양자 전문 교수 30여 명을 비롯해 연구원까지 합쳐 총 300여 명이 밀집해 집중 연구개발(R&D)을 한다. 연구실에서 창업한 벤처 스타트업도 많고 양자 관련 외부 기업들도 몰려든다.


캐나다와 밀접한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양자컴퓨터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양자법 제정과 전략기술 지정을 통해 2019~2023년까지 1조 4000억 원을 지원한다. 2020년에는 10년 내 양자인터넷의 전국 구현 목표를 제시하고 7000억 원을 들여 대학과 기업에 5개 양자정보과학연구센터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양자 R&D에 적극 나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IBM의 뉴욕주 포킵시 연구센터를 방문해 “IBM은 (허드슨밸리의) 반도체 제조, R&D, 중앙컴퓨터 기술, 양자컴퓨터 분야에 10년간 200억 달러(24조 원 이상)를 투자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양자암호통신에서 미국보다 앞서가고 있다. 2017년 양자통신위성(묵자)을 통해 베이징에서 오스트리아까지 7600㎞ 거리의 양자통신 실험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5년간 1000억 위안(약 18조 원)을 양자기술에 쏟아붓는다. 양자연구소와 기업 등 수십 곳이 밀집된 클러스터도 안후이성 허페이시 등에 있다. 바이두 양자컴퓨터연구소 등 빅테크 기업들도 양자투자에 적극적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반도체에 이어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 기술 수출 규제에 나서고 중국은 독자 개발 능력 고도화를 꾀하는 모양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과학기술이 헤게모니를 좌우하는 기정학(技政學)이 중요해지면서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양자·반도체·AI 등 전략기술 개발과 통제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영국 등 유럽도 양자 분야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방문한 스위스 취리히공대만 해도 석학급이 많고 대학원생까지 연구진이 수백 명에 달한다. 일본도 이화학연구소(RIKEN)가 2025년까지 슈퍼컴퓨터보다 1억 배 이상 빠른 양자컴퓨터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양자를 미래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규정한 뒤 “올해를 양자과학기술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더 많은 연구자를 양성하고 국제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양자기술은 미래 산업뿐 아니라 안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육성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K양자 수준은 선도국에 비해 걸음마 단계에 비유할 수 있다. 정부는 2017년 8년짜리 3040억 원 규모의 양자 예비타당성 검토가 무산된 뒤 2021년 말에서야 양자를 10대 전략기술(지난해 말 12대 전략기술)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올해 양자 예산이 지난해보다 36% 늘었다고 하나 984억 원에 불과하다. 2조 원 규모로 야심차게 다시 추진하려던 양자 예타 검토 계획도 현재 1조 원 미만(9000억 원대 후반, 총 8년)으로 줄여 기획안을 만들고 있다. 예타는 이르면 3월 말 이후 심사에 돌입할 예정으로 이번에는 꼭 통과돼야 ‘빠른 추격’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양자 연구진을 보면 표준연·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정부출연연구원에서 총 수십 명에 불과하다. 과기정통부는 국내 양자 핵심 연구진을 150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SK텔레콤이나 삼성종합기술원 등 일부 기업도 비교적 소규모 투자에 그친다. 양자는 국방·우주처럼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고 기업이 뒷받침해야 한다. 손영익 KAIST 교수는 “대학원생까지 합쳐도 양자 연구자가 500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졸업 후 국내에서 자리 잡을 연구소와 기업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중국·일본·유럽을 벤치마킹해 따라잡기에는 이미 때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가 디지털 강국이고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시너지를 낸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 이용호 표준연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장은 “선도국은 기초연구부터 시스템 개발까지 잘 연계돼 있는데 우리는 기초연구에 주로 머물러 있고 시스템 개발 투자도 많이 미흡했다”며 “양자컴퓨터의 경우 아직 걸음마 단계로 50~100큐비트 개발까지 4~5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단장은 이어 “다만 양자 기술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가속이 붙을 것”이라며 “현재는 동네 축구 수준으로 월드컵에 나가기에는 뚜렷이 한계가 있지만 잔디 구장(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도 깔고 16강, 나아가 4강 진출 분위기(정부 지원과 기업 진출)를 만들면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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