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혜선 "젊은 연주자들 보면 대단해… '좋은 책 같은 연주' 들려주는 게 큰 고민"

첫 에세이집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발간
"팬데믹 후 사랑하는 사람들에 감사하는 마음 담고자"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첫 에세이집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클라이번 콩쿠르 1차 예선에서 탈락한 뒤 ‘내 운은 여기까지구나’ 하며 음악을 더 안 할 듯했던 적도 있고, 20대 후반에는 전화회사 영업사원 등 음악과 동떨어진 삶을 살기도 했어요. 서울대 교수직을 떠나 해외에서 7~8년간 연주만 하고 지방을 돌아다니다 보니 큰 좌절이 온 적도 있고요. 클리블랜드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는 아이들 때문에 매주 뉴욕과 클리블랜드를 오가면서 한국에서 연주도 하느라 고됐어요. 요즘은 조성진·임윤찬·손열음 등 젊은 연주자들 보면 대단하잖아요. 여전히 매일매일이 좌절입니다.(웃음)”


동양인 여성 최초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 현직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 등 화려한 이력의 피아니스트 백혜선에게 ‘좌절’이란 말은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최근 첫 에세이집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발간하며 좌절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백혜선은 30일 서울 강남구의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책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예술가들의 삶을 보면 많은 이들이 다가가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그동안 쓴 글 중 사람들이 보면 재미있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담아봤다”며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전후해 어머니, 이모 등 가까운 사람들을 잇따라 떠나보냈다는 그는 “영원한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꼈다”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간 감정이 북받친 듯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첫 에세이집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앞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책 발간을 계기로 더 활발한 활동도 예고했다. 우선 4월 리사이틀과 11월 인천시향과의 브람스 협주곡 1·2번 협연 등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 세대와 어떻게 힘으로 비기겠느냐”고 너스레를 떠는 백혜선은 “제 연주를 보러 온 분들에게 제 음악이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읽는 것처럼 오래 남을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백혜선은 1980년대~1990년대 초반 국제무대에서 동양인 여성의 위상을 개척한 피아니스트다. 손열음 등 국내 젊은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롤모델로 그를 꼽는다. 백혜선은 “동양인 여성이 나오면 ‘어딜 감히 동양 여자가’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제가 연주하는 동안 청중들이 다 빠져나가는 수모를 견디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차이콥스키 콩쿠르 당시 마지막 순서로 나와서 연주한 후 끊기지 않을 듯 박수갈채가 계속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그는 교육자로서 자기만의 교육과정으로 독서를 권한다며 “대학생들에게 시집을 읽도록 한다. 한국 유학생들에게 결여된 게 상상력인데 책을 읽으면 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력이 대단하지만 “자기 것인지 유튜브에서 카피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영향을 받은 것들이 자기 것이 되도록 쌓이게 하려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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