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반도체 침체기에도 예년과 비슷한 공격적인 시설 투자를 집행해 세계 반도체 투자 1위 회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삼성전자(005930)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TSMC에 이 분야 1위 자리를 빼앗기며 반도체 ‘규모의 경제’ 격차가 심화할 것이라는 어두운 분석도 제기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의 밥 존슨 부사장은 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주최한 ‘산업전략심포지엄(ISS) 2023’에 참석해 이러한 관측을 담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존슨 부사장은 올해 TSMC가 연간 330억 달러(40조 5405억 원)를 투입해 반도체 시설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TSMC가 올해 글로벌 반도체 설비 투자 예상액인 1372억 달러(168조 5500억 원)의 24%를 차지하며 지난해에 이어 세계 1위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경기 둔화의 영향을 받아 지난해 투자액인 360억 달러보다 약 8% 줄인 모습이지만 선두 자리는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가트너는 TSMC의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라이벌인 삼성전자의 시설 투자는 다소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슨 부사장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32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보고 올해는 전년 대비 19% 감소한 260억 달러를 시설 투자에 투입할 것으로 관측했다. 올해 삼성전자의 세계 반도체 설비투자 시장 점유율은 19%로 1위 TSMC와는 5%포인트 격차가 벌어졌다. 가트너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1년 연간 381억 1000만 달러의 시설 투자로 업계 반도체 시설 투자 1위를 차지했으나 지난해부터 TSMC에 줄곧 선두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지난해 반도체 시설 투자 금액과 올해 투자 기조를 밝히지 않았다. 31일 2022년도 4분기 실적 발표회를 통해 구체적인 수치와 반도체 불황 대응 전략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2022년 한 해 반도체 제조 시설 투자에 47조 7000억 원을 투입할 것이라며 불황에도 시설 투자를 이어간다는 기조를 강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가 올해 제조 시설 투자액에서 격차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를 업종의 차이로 분석한다. TSMC는 시장 영향을 덜 받는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만을 100% 영위한다. 또한 5㎚(나노미터·10억 분의 1m) 이하 반도체 공정 구현을 위해 대당 2000억 원 이상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TSMC는 현재 삼성전자의 두 배 이상인 100여 대의 ASML EUV 노광 장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회사 주력인 메모리반도체 분야는 부침이 심한 데다 올해 수요 부진으로 매출 악화가 우려된다. 이에 따라 설비 투자액을 줄이고 기존 전략을 수정할 것이라는 업계 분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올해 설비 투자가 감소한다면 메모리반도체 점유율을 확장하겠다는 기존 전략은 다소 지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가트너는 삼성전자·TSMC와 함께 세계 반도체 ‘빅5’로 꼽히는 인텔·SK하이닉스(000660)·마이크론테크놀로지도 예년보다 투자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