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여성가족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대립하는 개념이 합쳐져 서로 모순될 때 종종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다’고 한다. 여성가족부가 그렇다. 여가부 안에서 여성과 가족은 대립한다. ‘여성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다 가족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 둘의 정책적 지향점은 분명히 다르다.


가족 정책의 관점에서 여성은 생산 주체다. 그래서 여성을 모성(母性)으로 부른다. 출산과 양육의 기능을 특히 강조했다. 그러나 여성 정책 관점에서 여성은 독립 주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 질서에 기인하는 모성을 부정한다. 우리 헌법 제32조에는 국가가 여성의 근로를 ‘특별히 보호’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는 헌법이 가족의 관점에서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계는 이 표현을 삭제하려 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호는 여성을 가족의 테두리에 가두는 수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모순은 여기서부터다. 여성과 가족의 지향점이 다른데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가족 정책은 계속 여성 정책과 부딪혔고 상쇄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충돌은 극에 달했다.


2018년 여가부는 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를 향해 “여성을 출산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며 제동을 걸었다. 같은 해 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은 “출산할 권리보다 낙태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했다. 인구 소멸 위기를 타개할 처방을 논하는 자리에서 여가부가 번번이 산통을 깼다. 아이를 낳으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누구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여가부 눈치만 보다가 회의는 끝났다.


한 술 더 뜨는 여성계의 주장도 등장했다. 기혼·출산 여성을 가부장제에 부역한 배신자라고 배척하는가 하면 레즈비어니즘(여성 간 동성연애)이나 시험관 시술을 통한 비혼 출산을 장려하기도 했다. 이런 부수적인 정책들이 인구 문제를 보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문제 해결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전통적인 가족을 해체해 가부장제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이 어떻게 주류 인구 대책의 담론이 될 수 있겠는가. 여가부가 이렇게 별점 테러하듯 가족 정책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동안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0.81명)은 세계 꼴찌를 향해 가고 있다.


페미니즘에서 남녀가 사랑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전통적인 가족은 해체의 대상이다. 가족은 가부장제를 강화·세습하며 결혼·출산은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가부가 가족 정책을 맡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가부는 사랑을 규제한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 일반화한 뒤 서로를 의심하라고 한다. 이번 ‘비동의 간음죄 추진 논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 늦기 전에 결단이 필요하다. 갈등과 반목 대신 사랑과 협동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 꼴찌의 출산율에서 벗어나야 하는 정부라면 남녀를 갈등하게 하고 가족과 모성에 부정적인 여가부를 폐지해야 마땅하다. 페미니즘 논리로 여성 정책을 추진하는 여가부는 가족 정책과 공존할 수 없다. 그래서 여가부 폐지는 ‘가족의 회복’이다.


*해당 칼럼은 서울경제 2월1일자에 게재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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