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성장·고임금에 신사업도 싹 정리…'감원삭풍' 몰아치는 게임사

■ '게임 맏형' NC마저 권고사직
팬데믹 기간 신사업 공격 확장
고금리發 경기악화에 부담으로
NC·데브시스터즈 등 사업 접어
업계 자회사 구조, 구조조정 용이
프로젝트 하나 실패땐 대량 퇴사도



업계의 맏형 격인 엔씨소프트(NC)마저 구조 조정에 나서면서 게임 업계에 해고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NC가 이번에 권고사직 카드를 꺼내 들게 된 데는 게임사들이 팬데믹의 훈풍을 타고 공격적으로 신사업을 확장하면서 인력을 대거 늘려온 것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향후 불어날 인건비에 발목을 잡힐 것을 예상하지 못한 업계의 연봉 인상 경쟁 역시 사업 실패의 비용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NC가 이번에 사업을 접은 팬 플랫폼 ‘유니버스’ 서비스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비게임 영역으로 사업 깃발을 꽂은 대표적 서비스 중 하나다. 2021년 초 론칭된 유니버스는 오프라인 위주로 진행되던 팬덤 활동이 코로나19로 온라인까지 확대되면서 이 같은 수요에 올라타 기존 게임 콘텐츠 위주의 사업에서 비게임 영역까지 콘텐츠 및 사업 스펙트럼을 확대하기 위해 추진됐다.


그러나 기존 SM엔터테인먼트와 하이브가 양분한 현 시장 구도에 이 서비스가 결정적인 균열을 내지 못했고 타사와 달리 NC는 직접 연예기획사를 운영하지 않다 보니 장기 사업성도 흐렸다는 것이 사업을 접은 이유로 분석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NC가 당장의 출혈을 감내하면서 사업을 더 이끌어갈 수 없는 이유는 글로벌 고금리 기조로 올해는 더욱 험한 경기 악화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특히 게임 업계의 경우 엔데믹과 함께 대면 활동이 늘면서 게임 결제 수요가 주춤해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모바일게임은 모바일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모바일 시장조사 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은 52억 6522만 달러로 전년보다 9.9% 감소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대작 게임까지 론칭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게임 업계나 글로벌 경기도 어수선하니 NC로서는 수익성이 불투명한 사업들을 끌고 갈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엔씨소프트

2021년 게임 업계가 이끈 연봉 인상 경쟁도 신사업 실패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당시 게임 업계는 개발자 확보를 위해 1000만 원 안팎의 연봉을 단번에 올렸다. 당시 경쟁의 선봉에 선 NC는 개발 직군과 비개발 직군의 연봉을 각각 1300만 원, 1000만 원씩 일괄 인상했다. 2021년 NC의 연봉 지급 총액은 약 4906억 원으로 2년 전인 2019년(3244억 원) 대비 27.6%나 늘었다. 반면 이 기간 영업이익은 되레 줄었다.


게임 ‘쿠키런’의 개발사 데브시스터즈 역시 최근 신사업 정리 과정에서 고용 불안이 야기되고 있다. 이 회사는 1월 31일 팬 플랫폼 사업 ‘마이쿠키런’에서 철수하며 해당 부서 팀원 40여 명에게 당일 퇴사를 통보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사측은 당일 퇴사 처리된 인원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비게임 조직 팀원이 타 부서에서 적합한 자리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측이 퇴사 통보 당일 장비 반납을 요구하고 팀원들의 사내 계정을 없앤 데다 이달 말까지 일괄 유급휴가 처리를 했다는 점 또한 고용 보장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마이쿠키런은 이 회사가 ‘쿠키런:킹덤’의 흥행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낸 2021년 5월 당시 쿠키런 지식재산권(IP) 확장을 위해 야심 차게 출범시킨 사업이다. 하지만 회사가 1년 만에 적자 전환하며 재무 부담이 커지자 수익성이 낮은 신사업부터 정리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는 동안 NC와 마찬가지로 인건비 부담도 대폭 늘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인력 현황을 보면 연결 기준 지난해 3분기 85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615명) 대비 244명 불어났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121억 원에서 175억 원으로 44%나 폭증했다.


이 외에도 열악해진 경영 상황에서 다수 게임사들은 체질 개선을 위해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넷마블에프앤씨는 지난달 블록체인 게임 시장 침체에 대응해 자회사 메타버스월드 직원 일부를 넷마블에프앤씨로 전환 배치했다. 크래프톤도 조직장급의 연봉을 동결하고 퍼블리싱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수 게임사들이 프로젝트별로 개발 자회사를 쪼개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자회사를 폐업해 해고할 수도 있다. 크래프톤도 재작년 상장을 앞두고 부실 자회사 ‘엔매스’ ‘스콜’ 등의 문을 닫은 바 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 대형 게임사는 신작 실패 이후 대다수 프로젝트를 뒤엎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며 “팀 단위로 움직이는 업계 특성상 프로젝트 하나가 좌초되면 해당 팀원들이 대량으로 퇴사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긴축 경영으로 버틸 체력조차 없는 중소 게임사들은 이미 상당수가 폐업했거나 위기에 몰려 있다. 실제로 ‘에곤’ 개발사 라운드플래닛은 최근 폐업했고 원더피플은 신작 ‘슈퍼피플’의 흥행 실패로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 ‘그랑사가’로 유니콘까지 등극했던 엔픽셀은 신작 부재로 재무 상황이 악화되며 구조 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전 직원 대상 권고사직을 통보한 베스파는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네 차례나 회생계획안 제출 기간을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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