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끼쳐 미안, 또 미안"…생활고 겪던 모녀의 슬픈 유서

연합뉴스 캡처

경기 성남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들은 빚에 쫓기면서도 월세와 공과금은 밀리지 않고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오전 11시 30분쯤 경기 성남시 소재 다가구 주택에서 70대 어머니 A씨와 40대 딸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주인은 10년 넘게 월세를 내며 이곳에 살던 모녀가 며칠 간 인기척이 없고 전화도 받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자택을 강제 개방해 이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집안에는 이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2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장사하면서 빚이 많아졌다”, “폐를 끼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남은) 월세를 처리해 달라”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모녀가 채무 부담 등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검 결과 두 사람의 몸에서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모녀의 생계는 자영업을 하는 B씨가 전적으로 책임졌는데 수입이 5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를 오가며 일정하지 않아 빚을 내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적지만 소득이 있어 기초수급자가 아닌 차상위계층이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50만원 월세와 공과금을 밀리지 않고 납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모녀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정부는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이후 공과금 체납 여부 등을 토대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성남 모녀가 처한 위기는 이 발굴 시스템 밖에 있었던 것이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JTBC에 “통상적으로 봤을 때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희가 보호할 수 있는 기준에 부합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약 9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 위기가구의 죽음은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난치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40대 둘째딸이 홀로 생계를 책임졌는데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했다. 세 모녀의 건강보험료가 1년 반 동안 체납되면서 위기 징후가 포착됐지만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가 달라 사회복지 비(非)대상자로 등록됐다. 비대상자가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년간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에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모녀가 생활고를 겪다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수개월 연체를 알리는 공공요금 고지서가 쌓여 있었다. 이들 역시 기초수급대상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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