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업계가 전국에 5만 개 넘게 포진한 점포를 앞세워 단순 재화 판매에서 나아가 반값택배·중고거래·무인세탁 등 ‘일상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본사는 ‘라이프 플랫폼’으로의 역할을 강조하며 사업을 넓혀갈 수 있고 고객은 접근성 좋은 편의점을 통해 일상 업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정작 서비스 운영 당사자인 점주들 사이에서는 새 서비스가 출시될 때마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돈은 안 되고 고객과의 갈등만 커지는 탓이다.
서울 시내의 한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최근 점포 내 설치된 택배 기계 전원을 끄고 빈 상자로 가려놨다. 고장 난 것은 아니지만, 고객과 신경전을 벌이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다. A씨는 “가져온 택배 대신 다른 (가벼운) 물건을 올려 무게를 속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신 접수해달라는 분도 있다”며 “그 손님들이 온 김에 물건을 많이 사는 것도 아니라 매상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편의점들은 택배 운임의 약 15%를 수수료로 받는데, 이를 본사와 나누면 점포에 떨어지는 돈은 운임의 10% 안팎이다. 택배 상자가 매장에 쌓여 불편해지는가 하면 수령한 짐의 포장을 벗겨 쓰레기만 매장에 버리고 가는 고객도 많다.
미수령·방치·분실로 갈등을 빚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편의점 택배 관련 소비자 상담은 2019년 279건에서 2021년 364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에는 편의점 점포를 활용한 비대면 중고거래까지 등장해 점주들의 피로감은 더욱 커졌다. 택배·중고거래를 본사에서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포 담당 영업관리직원의 요구 혹은 부탁이나 본사와의 관계 설정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그만두려는 곳도 적지 않다.
점주들의 시름은 올해 더욱 깊어졌다. 고물가로 편의점 매가가 크게 뛰어 다른 채널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값싼 택배나 중고 거래를 위해 들르는 손님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메인’인 제품 매상보다 돈 안 되는 택배 상자만 쌓여가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환경부의 ‘공병 보증금 반환 제도’에 따른 공병 수거 역시 공간 부족·위생 상태를 이유로 수거를 거부하면 관공서에 신고가 들어가 경고를 받는 사례도 있다. 편의점이 공병 한 개에 얻는 돈은 10원 남짓이다.
상식 밖의 민원도 넘쳐난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역과 아파트 3개 단지가 연결되는 곳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는 “무작정 들어와서는 뜨거운 물 좀 받아가겠다는 손님부터 물건 들이밀며 ‘이따 누가 와서 찾으면 건네달라’고 하는 분도 있고, 물건 살 것처럼 들어왔다가 쓰레기만 버리고 가는 사람도 봤다”며 “별의별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한테 치이다 보니 본사에서 새 서비스 냈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