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 등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시장과의 인식차가 당분간 지속될 경우 향후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월 2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미 연준과 시장 간 인플레이션 및 정책 경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여전히 큰 만큼 앞으로 기대 조정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2월 2일 시장상황 점검회의)
“일부는 최근 긍정적인 경제 지표에 무게를 두고 금융시장이 이미 바닥을 찍었다고 주장하지만, 대다수는 침체 이전 저점을 형성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을 꼬집으며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회복세가 일시적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 1월 31일 국제금융 인사이트 자료)
지난 2일(한국시각)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나온 제롬 파월 의장의 발언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해석되면서 시장은 환호했다.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3월과 5월에 각각 25bp(1bp는 0.01%포인트 금리 인상) 올리고 난 뒤 금리 인상이 종료될 것이며 일부에선 연내 금리 인하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난해 말부터 발생한 연준과 시장의 줄다리기에서 시장이 승리했다는 선언마저 나왔다.
이같은 해석에 FOMC 결과 발표 당일 미 국채금리가 하락하고 주가는 상승했으며 미국 달러화지수(DXY)도 0.9% 떨어지는 등 각종 시장 지표가 반응했다. 한국도 미 연준과의 금리 역전 폭이 1.00%포인트에서 1.25%포인트로 확대됐음에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0.8%, 1.8% 오르고 원·달러 환율은 11원 넘게 내려 1220원 30전까지 떨어졌다.
시장이 안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한은에서는 되레 경고가 쏟아졌다. 연준이 시장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이 시장의 기대보다 조금만 더 긴축적인 행보를 보여도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국내 금융·외환시장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과 시장의 시각 차이에 대한 우려는 이번 FOMC 이전부터 제기됐다. 올해 1월 중 미국 S&P500 지수가 5% 상승한 것을 포함해 전 세계 주요국 주가가 일제히 반등했고 국채금리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화지수도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7% 떨어졌다. 이때부터 경제 펀더멘탈 개선이 본격화되지도 않았는데 시장이 낙관적인 기대감을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금융센터는 “경기 및 물가, 통화정책 등 향방에 대한 상반된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며 “당분간 상승과 하락이 교차하는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과 시장의 시각에 괴리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 전문가들은 첫 번째 이유로 연준의 신뢰 상실을 꼽는다. 2021년 말 당시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했다. 이 예측이 틀린 이후로 시장은 연준의 물가나 성장 전망이 틀릴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연준이 ‘오랫동안 높은 금리(high for longer)’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한 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파적인 발언도 통화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수사 정도로 여기고 있다.
시장 자체의 습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일 한은과 대한상공회의소의 공동세미나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에게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경기 연착륙 가능성에 금융시장이 크게 반응하는 것에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이에 신 국장은 “금융시장은 비관적일 땐 너무 비관적이고 돌아서면 다시 과잉 반응하는 현상이 항상 나타났다”고 답변한 바 있다.
파월 의장 발언에서 근거를 찾는 시각도 있다. 파월 의장이 연내 인하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썼다는 점에서 시장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파월 의장의 발언 자체는 중립적이었는데 시장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고 반응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한은도 이 총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연내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시장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이는 한은의 신뢰 상실 문제라기보단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가 반영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는 “한은이나 연준 모두 물가 등 각종 지표에 불확실성을 언급하면서 향후 금리 경로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하는 상황”이라며 “시장이 금리를 어떻게 예측하든지 그것 자체를 부인하진 않지만 추후 최종금리가 바뀌었을 때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됐다고 비난하지 말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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