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 제조업 확산…반도체마저 짐싼다 [뒷북비즈]

■실적악화 후폭풍…금융권 넘어 K산업 '전방위 감원'
대기업마저 반도체 연관 사업 철수
생산직 퇴직신청 받고 전환 배치
리스타트 지원 등 인력 구조조정


글로벌 수요 둔화와 경기 침체로 국내 주력 업종의 실적이 악화하는 가운데 금융권뿐 아니라 제조 기업들도 희망퇴직에 대거 나서고 있다.


전자·자동차·디스플레이·정유 등 주력 업종에 더해 반도체 연관 업종마저 일부 사업부를 정리하거나 희망퇴직을 실시할 정도로 ‘도미노 희망퇴직’이 현실화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A사는 최근 인쇄회로기판(PCB) 연관 사업을 접기로 하고 직원들을 다른 부서로 배치하거나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이들 부품은 TV 등 가전제품과 핸드폰에 들어가는데 가전과 반도체 경기가 악화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증권 등 금융권에서 시작된 희망퇴직이 제조업에도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불황으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전방산업 기업들의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관련 기업들도 후폭풍을 맞은 것이다.


A사의 경우 중국의 저가 공세까지 겹쳐 2015년 연간 1000억 원에 달했던 PCB 연관 사업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해당 사업부 생산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희망퇴직은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모비스(012330)는 지난달 말부터 ‘50대 이상’ ‘책임 직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전직과 경력 전환을 위한 리스타트 프로그램 신청을 접수 중이고 정유회사인 에쓰오일도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희망퇴직을 생산직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매각 작업이 진행되는 HMM(011200)은 근속 10년 이상 육상직 직원에 대한 리스타트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데 2년치 연봉과 자녀 학업 지원금, 재취업 교육 등을 제공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국내 상장기업 30%가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처했다”며 “임금이 고정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희망퇴직 등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무직서 생산직까지…車·전자·정유 등 업종 안 가리고 '칼바람'


제조 대기업들의 잇따른 희망퇴직 실시는 경기 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이 부진한 사업부의 몸집을 최대한 줄이고 미래 먹거리에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자동차·정유 등 지난해 호실적을 냈던 업종에서도 업황 악화를 내다보며 비용 절감에 본격 나서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20대 기업 중 하나인 A사는 최근 인쇄회로기판(PCB) 등 반도체 연관 사업 부문에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비용 절감을 당부했다. 또 일부 반도체용 중간재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지난해 말 결정하고 희망퇴직, 전환 배치 등 인력 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인력 조정과 비용 절감 움직임이 A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복합 위기의 한파를 덜 겪은 정유 업체도 희망퇴직 바람을 비껴가지 못했다. 에쓰오일은 조직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해 2020년부터 사무직 직원만 대상으로 하던 희망퇴직 신청 범위를 올해부터 생산직으로 넓혔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확대로 올해에는 업계의 실적 악화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미래차 전환에 발맞춰 인력 구조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꿔야 하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인력 조정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현대모비스는 50대 이상 책임 직급(과·차·부장) 직원의 퇴직을 돕는 ‘리스타트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면 연봉의 50%와 최대 3년까지 인정되는 잔여 근속 기간을 곱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정년이 2년 남았다면 1년 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1000만 원의 일시금과 자녀 1인당 학자금 1000만 원도 최대 3명까지 지급된다. 회사는 전직이나 창업·재취업을 위한 사내 교육을 제공하며 대상자는 2개월 내로 퇴직하게 된다. 한화에서 기계설비 사업을 담당하는 ㈜한화모멘텀도 지난해 말 한화정밀기계와의 결합 과정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50세가 넘었거나 근속연수가 20년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으며 평균임금 24개월분의 위로금과 학자금, 재취업 지원금을 지급했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은 지난해 말 근속 10년 이상의 육상직 직원을 대상으로 ‘리스타트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년 치의 연봉과 자녀 학업 지원금, 재취업 교육 등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업황 악화로 수천억 원대 적자를 기록 중인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1월 생산직에 이어 올해 초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자율휴직 신청을 받는다. 희망자에 한해 3∼7개월간 쉬는 방식으로 고정급의 50%를 지급한다. 이뿐 아니라 사업 구조 개편에 따라 임직원 200명가량을 다른 계열사로 전환 배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등 주력 제품의 재고가 쌓이면서 생산 라인 가동률이 떨어진 탓이 컸다. 지난해 말에는 경기도 파주에 소재한 7세대 TV용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수원·광주·구미 사업장 복도 전등의 절반을 꺼놓았다. 실내온도를 최대 5도가량 낮춘 사업장도 있다. 이 회사의 디바이스솔루션(DX·반도체) 부문은 같은 해 12월 ‘비상경영 체제 전환’이라는 공지문을 사내 연결망에 올리고 임직원들에게 해외 출장, 소모품 비용 등을 줄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명분으로 120명의 지역 전문가 파견 역시 돌연 취소했다. 경영난에 빠진 위니아전자는 지난해 9월부터 직원들의 월급과 퇴직금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올해 기업들의 희망퇴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최근 노동시장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증가율은 2.7%인 반면 올해는 0.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수익성 악화, 자금시장 경색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축소하고 인력 구조 조정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천구 대한상의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연구위원은 “예상보다 심화된 경기 부진으로 고용 규모가 컸던 산업군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채용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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