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주요 에너지 공기업 이사진 자리를 속속 꿰차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로 전기·가스요금이 급등하며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 관리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이지만 관련 경력이 전무한 낙하산 인사들이 에너지 공기업 정책 결정의 키를 쥐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공기업의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요구하는 마당에 정작 해당 이사회는 전문성이 없는 여권 정치인의 뒷마당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전력기술은 이달 1일 윤상일 국민의힘 서울 중랑(을) 당협위원장을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윤 신임 감사는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에 흡수된 미래희망연대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여권 출신 인사다. 한전기술은 사외이사진도 여권 정치인들로 꾸리고 있다. 지난해 9월 나기보 전 경북도의원에 이어 올 1월에는 이수경 전 경북도의원이 한전기술 사외이사로 잇따라 선임됐다. 이들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이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주요 자리를 여권 정치인으로 채우고 있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시절 지역구 사무국장을 지낸 바 있는 최익규 씨를 상임감사로 임명한 한수원은 그해 11월에는 윤위영 전 영덕군청 부군수와 이상효 전 경북도의회 의장, 전충렬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사외이사로 잇따라 선임했다. 윤 이사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상주시장 예비후보로 출마했고, 이 이사는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경북도의회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여권 인사다. 전 이사 역시 박근혜 정부 당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정갑윤 국회부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신임 사외이사진에 이름을 올린 3명 모두 한수원 본사가 위치한 대구·경북(TK) 출신의 여권 정치인들인 셈이다.
앞서 한국전력공사는 김종운 국민의힘 나주화순당협위원장을, 발전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은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김회구 전 정무비서관을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한국석유공사도 지난해 말 김철현 전 대구시장 정무특보와 윤정식 전 송파구의회 의원을 잇따라 비상임감사로 앉혔다. 지난해 12월 한국가스공사 수장으로 취임한 최연혜 사장 역시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관련 공기업 이사회를 전문성 없는 정치인들이 독식하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대선 캠프 출신이나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들을 보은 인사 차원에서 공기업 기관장이나 감사·사외이사로 내리꽂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공기업 운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해칠 수 있는 탓이다. 더욱이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과 자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산 매각과 비용 절감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이사회 자리를 꿰차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행처럼 굳어진 낙하산 인사는 심각한 문제”라며 “에너지 위기일수록 공기업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