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스크’를 떠안은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의 명성을 잃고 있다. 중국과 발맞춘 강력한 방역 정책과 정치적 불안을 계기로 싱가포르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홍콩에서 글로벌 자금이 빠져나가는 ‘차이나 런’ 현상이 발생해 싱가포르가 새로운 금융중심지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인력 컨설팅사인 ECA인터내셔널은 '해외 체류 중인 아시아인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홍콩이 92위를 기록해 2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고 8일(현지 시간) 밝혔다. 아시아 출신 주재원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세계 500개 이상의 도시를 대상으로 기후, 인프라, 주택·공공·의료 서비스, 정치 환경, 치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순위를 매긴다.
싱가포르가 조사를 시작한 2005년부터 17년 연속 부동의 1위를 유지한 가운데 특히 홍콩의 순위가 급락해 주목받았다. 홍콩은 2020년 58위에서 2021년 77위, 지난해 92위를 기록해 2년 연속 하락했다.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2019년(93위)을 제외하면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17년까지만 해도 홍콩은 29위를 차지했지만 급격히 매력도가 하락했다.
ECA인터내셔널은 그 이유로 ‘코로나19 관련 규제와 정치적 환경 변화’를 들었다. 홍콩은 2020년 1월부터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보조를 맞춰 고강도 방역 정책을 유지해온 바 있다. ECA는 ”지난해 홍콩의 방역 정책 유지는 전 세계적 추세와 대조적이었다”며 다른 아시아 도시들이 지난해 방역 완화 여파로 전반적으로 순위가 상승했지만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들과 홍콩이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진 점도 꼽혔다. 리 퀘인 ECA 아시아지역 책임자는 “홍콩의 몰락은 최근 입법회 선거, 행정장관 선거 등에서 목격된 정치환경의 변화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이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홍콩의 선거제를 개편한 결과 2021년 12월 홍콩 입법회 선거는 민주 진영의 출마 없이 진행돼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5월에는 강경 친중파인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이 당선되며 ‘헥시트(홍콩+Exit)’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ECA는 올해 홍콩?마카오 등이 중국과 함께 방역 규제를 폐지한 만큼 회복세를 예상하면서도 “팬데믹 전의 생활환경으로 완전히 돌아갈 가능성은 작다”며 “역내 경쟁국인 싱가포르에 계속 밀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1위 싱가포르의 뒤를 이어 일본의 도쿄와 뉴질랜드의 웰링턴이 각각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순위 하락 폭이 가장 큰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와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각각 249위(62계단 하락)와 223위(42계단 하락)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