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열병식을 통해 대규모 핵전력을 공개했다. 특히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무기와 전술핵부대도 선보여 대남·대미 동시 핵 공격 능력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안보·정치적 압박을 위한 ‘핵무장 쇼’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군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열렸으며 이튿날인 9일에서야 관영 매체를 통해 영상과 행사 내용 등이 보도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번 행사에 참석해 직접 병력과 군 장비를 사열했다. 김 위원장의 이날 행보는 자칭 ‘백두혈통’으로서의 전통성을 내세워 체제 결속을 유지하려는 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김일성 주석의 대표 옷차림인 검은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참석해 혈통 승계의 상징성을 부각시켰다. 딸 김주애도 동행했는데 이로써 권력 세습 의지를 거듭 확고히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행사에는 무려 3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핵 개발로 초래된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 상황에서 대규모 군중 동원을 통해 민심이반을 최소화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장면 역시 정무적 효과가 크다”며 “심야 연출로 군사적인 효과도 있지만 정무적인 내부 단속을 노린 ‘극장 정치’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열병식이 모터사이클, 반정차포 종대, 평사포 종대, 탱크 종대 등 기계화를 상징하는 종대들의 열병 진군으로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포병부대가 뒤를 이었다. 특히 통신은 전술미사일 종대와 장거리순항미사일 종대 등을 가리켜 “강위력한 전쟁 억제력, 반격 능력을 과시하는 전술핵운용부대 종대들의 진군”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민간 위성 업체 맥사테크놀로지는 김일성광장에 ICBM 화성-17형을 탑재한 이동식발사대(TEL) 행렬이 지나가는 장면을 공개했다. 해당 미사일은 2017년 4월 김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 열병식에서 원통형 발사관을 탑재한 채 공개된 TEL에 실린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TEL은 한쪽에 8개씩 16개의 바퀴를 달았으나 이번에 공개된 TEL은 한쪽에 9개씩 18개의 바퀴를 달고 나왔다. 해당 미사일에 대해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9축의 TEL에 실려 발사관에 들어간 형태로 공개된 신형 미사일이 히든카드로 고체연료 엔진을 사용하는 ICBM급 신형 미사일의 모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발사관 내부가 비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북한의 허풍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며 열병식에 모형을 공개하고 이후 실제 개발 시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고체연료 추진 방식의 미사일은 유사시 기습 발사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로서는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해 요격하기 쉽지 않게 된다.
당초 관심을 모았던 김 위원장의 공세적인 대남·대미 메시지는 없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일부 보도처럼 개성에서 대량 아사자가 발생했다면 매우 충격적인 것”이라며 “식량과 비료 지원이 절실한 상황을 고려해 대외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