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도 줄이는 것에 진심인 이창용…10년째 ‘脫중국’ 외쳤다 [조지원의 BOK리포트]

ADB·IMF 근무 때부터 중국 의존도 경고
中 특수로 덕 봤지만 구조조정 타이밍 지연
작년부터 대중 무역적자 확대 등 리스크 고조
서비스업 고부가가치화 등 구조개혁도 강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신현송 BIS 경제보좌관 겸 조사국장이 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와 한국경제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린 제1회 한국은행-대한상의 공동세미나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2023.02.01

“어떻게 생각하면 외환위기 이후에 굉장히 많은 구조조정을 하고 대기업들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는데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고도성장하는 과정에서 중국 특수가 우리나라가 필요로 한 구조조정을 할 시간을 10년 준 것입니다. 중국 성장이 낮아지면 주변국은 분명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발언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얼마 전에 한 말 같지만 2016년 8월 12일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국고등교육재단 강연에서 한 말이다. 얼마 전인 2월 1일 한국은행·대한상공회의소 공동세미나에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과의 대담에서 이 총재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과거 우리가 중국의 낮은 임금을 기초로 중간재를 수출한 뒤 최종재를 수출해왔다면 지금은 중국의 임금도 오르고 중국 기업도 경쟁력이 생겼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 특혜를 누렸던 것에서 벗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중국의 의존도를 바꿔야 할 때가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6년 8월 한국고등교육재단 세계 석학 초청 강연에서 당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중국경제 특강’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유튜브 캡쳐

이 총재가 10여 년 전부터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우리 경제가 어렵겠지만 그동안 미뤄왔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중국 의존도를 언급했다. 이 총재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장 다변화 등을 통해 중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코노미스트, IMF 아태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누구보다 중국 경제를 꼼꼼하게 들여다본 이 총재가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강연에서 이 총재는 중국 경제가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어려운데 성장률이 점차 하향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처럼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이 총재는 “우리나라는 중국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중국이 빠르게 고도성장할 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만 슬로우다운(둔화)하게 되면 다른 나라보다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이 총재 인터뷰와 한은 내부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총재는 중국 특수로 우리나라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먹고살 수 있었지만 동시에 구조개혁이 늦어지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실제로 차이나리스크는 우리 경제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298억 3000만 달러로 2021년(852억 3000만 달러)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미국(14.5%), 유럽연합(7.1%), 동남아(4.8%), 일본(1.9%) 등 대부분 지역에서 수출이 늘었는데 중국만 4.4% 감소했다. 중국 수출이 8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대중 무역수지도 4개월 연속 적자다. 특히 올해 1월 대중 무역적자는 39억 7000만 달러까지 확대됐다. 중국 수출 불안에 올해 경상수지도 월별 흑자와 적자 여부를 예단하기 어려울 정도의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높은 중국 의존도 리스크에 대한 한은의 분석은 조금 더 세세하다. 지난 7일 한은 조사국이 발표한 ‘향후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와 시사점’에 따르면 향후 분절화 리스크에 대비해 공급망이 일부 국가와 품목으로 집중되는 것을 줄여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지리적·품목별 다변화로 공급망 복원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총재가 평소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 측면에서 중국 특수로 인해 지연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전광판에 중국발 여객기 등 도착 정보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중국 의존도를 줄일 방법은 무엇일까. 이 총재의 과거 발언을 되짚어보면 제조업 수출로 먹고사는 것을 넘어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총재가 직전까지 몸을 담았던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이 글로벌 무역 패턴 변화에 대응하려면 서비스 업종의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IMF는 2021년 3월 발표한 ‘한국의 성장 전망, 인구와 코로나19 극복’ 보고서에서 2010년대 한국의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이 미국의 49% 수준이고 도소매, 숙박·음식 등 일부 업종은 30%대 전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총재 역시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제조업은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규제개혁을 통해 제조업과 연계된 서비스업 등에서 새로운 성장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생산성 향상, 자원 배분의 효율성 제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역적으로는 인도 등을 중국의 대체 생산 기지로 보고 분석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은 조사국은 지난 3일 발표한 ‘인도경제 현황과 성장잠재력 및 리스크 평가’ 자료를 통해 “인도는 경제 규모 6위 국가로 부상하는 가운데 최근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써 수혜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짚었다. 인도가 중장기 성장잠재력은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환경오염이나 친화적이지 않은 기업 환경 등을 리스크로 꼽으면서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나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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