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신축 대단지 아파트의 물건이 인근 구축 아파트보다 ‘역전세’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오른 금리에 목돈이 필요한 전세를 꺼리는 경향이 뚜렷해진 데다 입주 물량이 전년보다 다소 증가한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10일 직방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2월 7일까지 체결된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를 분석한 결과 준공된 지 얼마되지 않은 초신축(5년 이하)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가장 많이 하락했다. 이번 조사는 총가구 수 30가구 이상 아파트(임대 제외)를 대상으로 계약일 기준 실거래 집계로 평균 전세 가격을 집계했다.
준공 5년 이하 아파트는 지난해 평균 7억 2442만 원에 전세 거래가 체결됐지만 올해는 평균 6억 4186만 원에 거래돼 8256만 원(11.4%) 하락했다. 반면 준공 6년 이상~10년 이하 아파트는 같은 기간 평균 7억 5159만 원에서 평균 6억 8565만 원으로 변동해 6594만 원(8.8%) 떨어지는 데 그쳤다. 아파트의 나이가 많을수록 전세 가격 변동 폭이 낮은 경향을 보였는데 11년 이상~15년 이하 아파트는 5314만 원(6억 6885만 원→6억 1571만 원), 16년 이상~30년 이하 아파트는 4141만 원(5억 4240만 원→5억 99만 원)의 하락 폭을 기록했다. 하락률 역시 각각 7.9%, 7.6%로 낮아졌다.
이 같은 경향은 신축 대단지와 구축 중소 규모 단지가 어우러져 있는 지역별 거래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을 대표하는 신축 대단지 마포래미안푸르지오(2014년 준공, 전용 59㎡)는 올해 1월 5억 5000만 원에 전세 임차인을 구했다. 이는 2년 전 전세 가격인 7억 5000만 원보다 2억 원(26.7%)이나 빠진 것이다. 인근의 또 다른 신축 아파트인 공덕자이(2015년 준공, 전용 84㎡)는 2년 전 평균 8억 7000만 원대에서 전세 계약이 체결됐지만 이달 들어 6억 7000만~7억 9000만 원에 거래되며 집에 따라 8000만~2억 원까지 전셋값이 떨어졌다.
그러나 인근 구축인 마포현대(1988년 준공, 전용 85㎡)는 2021년 3월 체결된 전세 가격이 5억 3500만 원이었고 올해 2월에도 비슷한 수준인 5억 3000만 원에 전세 계약이 맺어져 하락 폭이 크지 않았다. 해당 물건 외에 지난해 말(11~12월) 체결된 전세 계약 역시 1500만~7500만 원 수준의 낙폭을 기록했을 뿐 인근 신축처럼 전세 가격이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다. 2021년 준공된 상도역롯데캐슬파크엘(전용 59㎡)은 ‘역전세’ 금액이 1억 1250만~1억 6250만 원으로 2년 전 8억 원대에 달했던 전세 가격이 6억 원 중반까지 미끄러졌다. 그러나 인근 구축 아파트인 상도동 건영아파트(1997년 준공, 전용 84㎡)는 같은 기간 2000만 원만 빠졌다.
신축 대단지 위주로 전세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일부 단지에서는 집주인들이 보증금 반환을 위해 집을 급매물로 내놓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단지 규모가 9510가구에 달하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2018년 준공)’는 올해 1월 84㎡가 2021년 9월 최고가(23억 8000만 원) 대비 무려 8억 5000만 원 떨어진 15억 3000만 원에 거래되는 등 급매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단지 인근의 A 공인중개사는 “상당수 저가 거래는 계약 기간이 만료됐으나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집주인이 집을 급매보다 가격이 낮은 ‘급급매’로 내놓으면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일부 집주인은 낮아진 시세만큼 세입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역월세’를 선택하기도 한다. 헬리오시티 84㎡의 전세 가격은 지난해 8월만 해도 12억 원에 달했지만 올해 1월 6억 9000만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A 중개사는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집주인 중 일부는 돌려주지 못한 보증금에 대해 전세자금대출 금리만큼의 이자를 매겨 세입자에게 지급하기도 한다”며 “최근 이 일대 부동산에서는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들에게 역월세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금리 인상으로 인해 전세 대출이자보다 월세 이율이 낮아져 전세 수요가 줄어든 반면 주택 매매 ‘거래절벽’ 상황 속에서 임대차계약으로 입주 잔금을 해결하려는 물량은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며 “특히 신축이라는 이유로 2년 전 비싸게 전세 계약이 체결됐던 단지에서 역전세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