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nsight]"최대 이익 발표가 두렵다"는 기업들…이 역설을 어찌하오리까

정치권 "돈 잔치""횡재세" 옥좨
美 IRA·中 반도체굴기 등 대응 속
경제는 심리, 이윤창출 부정 안돼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존립할 수 없다. 고용도, 투자도, 주가 상승도 이익을 내야 가능하다. ‘나라의 근간’ 등의 수사도 그래야 덤으로 붙는다.


코로나19로 고군분투한 상황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낸 일부 기업들이 요즘 되레 위축되고 있다. 실적 발표를 앞둔 일부 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게 신경 쓰이고 두렵다”고 할 정도다. 실적 잔칫날 왜 위축될까. 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14일 “기업의 실적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정치권이 이유”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익을 내고도 눈치 보기는 오랜만”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그랬다. 정유나 금융·이동통신 등이 잇따라 최고 실적을 내놓자 이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도 곱지 않다. 이익만 나면 ‘공공재’ ‘사회적 책임’을 앞세워 기업을 몰아붙이려는 반(反)시장주의가 여야 가릴 것 없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낸 은행들이 고금리 장사치로 매도되는가 하면 대규모 설비투자 이후 모처럼 호실적을 거둔 통신사들은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으로 수익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고유가의 호재로 이익을 낸 정유사도 난데없는 횡재세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169석을 틀어쥔 야당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노조법 개정안과 횡재세 도입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정부 여당도 민간기업에 강압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정부나 정치권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소한으로, 그것도 절제된 표현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술경쟁속 생존도 벅찬데”…잇딴 ‘견제구’에 속앓이




문제는 기업들이 맞닥뜨린 대외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전기자동차 등 우리 주력 수출 업종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에 따른 타격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미중 갈등의 와중에 주요국들이 자국 보호주의로 돌아서면서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복합 위기에 더 취약하다. 이익은 줄어드는데 환율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돈줄이 마르면서 기업 대출금도 사상 최대 폭으로 증가한 상황이다.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진 ‘반도체칩과 과학법(반도체지원법)’,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움직임, 속도가 빨라진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 주요 국가들이 한국의 수출길을 앞다퉈 가로막는 만큼 무역 부진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재계는 기업들이 경쟁하는 나라 밖 상황이 엄중한데도 정치권은 ‘기업 이익 때리기’에 매몰돼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기업들이 급변하는 글로벌 규제와 기술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반시장주의적 정책을 일삼는 행위는 수출과 내수 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을 거둔 은행권을 향해 ‘고금리 장사’를 한다고 매도한 것이다. 은행들이 최대 실적을 거둔 배경에는 고금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은행권의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은 역대 최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금융 당국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솔직히 현재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는 상당히 축소돼 있다”면서 “금리가 오르면서 잔액 기준이 확대돼 구조상 이익이 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실적 호조 배경에는 꾸준한 투자와 원가 절감 노력도 있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명예퇴직을 상시화했고 정보기술(IT) 인프라 투자도 적극적으로 늘렸다. 금융지주사의 한 임원은 “기준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도 대출금리를 내렸고 매년 수천억 원씩 취약 차주 지원에 나섰다”면서 “금리는 시장 원리로 작동되는데 정치권이 은행권 전체를 너무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이미 상생 용도로 은행들이 갹출해 5000억 원을 힘들게 모았다”면서 “은행이 할 수 있는 게 추가 여신 지원과 금리 인하 정도인데 무엇을 더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통신 업계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동통신 3사는 지난 수년간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에 수조 원을 투입했다. 지난해 3사가 매출 57조 원, 영업이익 4조 5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것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자 통신비를 낮추라는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5G 중간요금제 확대가 대표적이다. 통신사들은 데이터 사용량에 따른 요금제를 10GB 다음은 100GB로 설정해 유튜브 등 이용 비중이 높은 이용자들에게 높은 요금제를 부과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요구로 지난해 8월 30GB대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요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올해 업무계획에 5G 중간요금제 '추가 도입'을 포함했다. 30GB와 100GB 사이 50GB 안팎의 사용량을 대상으로 한 요금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배경이다. 통신사들은 불만이다. 최근의 실적 호조는 과거 5G망 투자에 따른 성과이고 6세대(6G) 등 다음 네트워크 투자를 위해 이익을 쟁여둬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기업의 존재 가치인 이익 창출 의욕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압박이 강하다 보니 기업들의 눈치 보기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위기 때 최후의 보루는 정부와 기업인데 그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업의 자유라는 가치를 꺼낸 현 정부는 시장중심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방향은 맞다”면서 “다만 각론을 전달할 때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제약하는 거친 표현은 삼가고 기업의 기를 살려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도 “지난 정부 때 반기업 정서가 있고 시장 원리를 무시한 정책도 많아 기업들이 많이 위축됐다”면서 “자꾸 그 기억이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적당한 견제도 좋지만 과도한 개입이 경제 전반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도 아직은 좀 혼선이 있는 것 같다”며 “기업을 업어주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지금 그대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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