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행동주의 펀드가 지켜야 할 원칙

시그널부 이충희 기자


10여 년 전부터 최근까지 국내 기관들의 대표적인 투자 전략은 가치주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저평가 주식을 잘 찾아 투자하면 시장이 머지않아 제대로 가치를 알아봐 줄 테고 그러면 비로소 높은 수익률에 올라탈 수 있다는 게 가치투자의 논리다. 이 전략에 치중한 펀드매니저들은 남들보다 저평가된 종목을 먼저 발굴해 투자하는 데만 대부분 힘을 쏟았다.


한때 동학개미 운동의 아버지로도 불렸던 존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가치투자의 선봉장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2014년 대표가 된 그는 메리츠코리아펀드 열풍을 주도하며 2년 만에 2조 원에 달하는 시중 자금을 쓸어 담았다. 그러나 종목 발굴에만 집중한 채 앉아서 주가 상승을 기다린 결과는 참담했다. 시장이 곧 가치를 알아봐 줄 것이라는 기대가 신기루처럼 무너지면서 펀드 수익률은 수년 만에 고꾸라졌다. 그의 인기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올 초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존리의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했다는 소식은 투자 업계의 대세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세대교체가 이뤄진 펀드매니저 세계에서는 단순한 가치투자를 벗어나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최근 활약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행동주의 펀드라면 타깃 삼은 회사를 움직일 수 있게 소액주주의 표심을 필히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펀드의 기본 목표는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 당장 힘을 갖기 위해 소액주주 의결권이 필요하지만 이들의 이익을 무한정 대변해 줄 수 없는 게 숙명인 것이다.


최근 대세가 된 여러 행동주의 운용사가 훗날 ‘먹튀’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투자한 기업이 확실한 ‘밸류업’을 이룬 뒤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행동주의 전략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좋은 기업을 만들었다는 이 명분이 꼭 필요하다. 한때 여론이 가치투자의 대가로 추켜세웠다가 지금은 실패한 투자자로 낙인찍어버린 과거가 되지 않으려면 행동주의 펀드는 이 원칙을 곱씹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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