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서경제(57·가명)씨.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다 보니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몇달 전부터 속이 쓰리고 더부룩한 느낌이 심해졌다고 느끼던 서씨는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로부터 "살이 너무 빠진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건강 관리에 너무 소홀히 했나' 싶어 건강검진차 병원을 찾은 서씨는 위암이 의심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주치의는 "위암 초기에는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다"며 "종양 크기가 커지면서 복부 불편감이나 구역질, 구토, 복통, 토혈, 체중감소, 흑색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났다면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말기 위암에는 약도 없다던데...' 정밀검사 예약을 잡고 돌아온 서씨는 심란한 마음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위암은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 중 하나다. 지난해 말 발표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위암 신규 환자는 2만 6662명으로 전체 암 발생건수의 10.8%를 차지했다. 2019년 전체 암발생건수의 11.6%를 차지하며 발생순위 3위에서 한 계단 내려왔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네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오랫동안 국내 발생률 1위를 지키던 위암이 4위까지 내려앉은 데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우선 위암의 대표 원인이라고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률이 크게 줄었다. 짜게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나트륨 섭취량이 감소했고 위내시경 검진이 일반화된 것도 한몫 했다. 내시경을 통해 선종과 같은 암 전단계 병변을 일찍 발견해 절제하니 암 발병률 감소로 이어졌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대장암 발병률이 높아진 것도 상대적으로 위암 발생 순위를 끌어내렸다고 평가된다. 이 같은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위암은 폐암, 간암, 대장암에 이어 4번째로 흔한 암 사망 원인이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51.9명이 위암으로 새롭게 진단됐고 약 14.1명이 사망했다.
위암에 걸려도 초기라면 80% 이상은 별다른 증상이 없다. 증상이 생겨도 위궤양, 위염 등과 구분하기 어려워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만 40세 이상은 남녀를 불문하고 2년 주기로 위내시경 검진을 받도록 권고되는 이유다. 초기 위암의 경우 내시경 절제나 수술만으로 완치가 가능하지만 암이 진행돼 다른 장기로 퍼지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2016~2020년 암이 원발 장기에 국한된 조기 위암 단계에서 진단된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7.5%에 달한 반면 국소 전이된 경우 62.3%, 원격 전이된 경우 6.7%에 그쳤다. 예후가 나쁘다고 알려진 췌장암(2.4%)·담도암(2.8%)·간암(3.1%)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전이성 위암의 생존율이 유독 낮은 원인은 표적항암제에 대한 연구 성과가 미약한 탓이었다. 폐암 분야에서 EGFR·ALK·MET·KRAS 등 수많은 표적항암제가 허가 받는 동안 전이성 위암에선 2010년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 이후 임상적 유의성을 증명한 신약이 전무했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위암은 발병기전이 복잡하고 종양 내 이질성(heterogeneity)이 크다"며 "아직까지 위암에 특화된 강력한 바이오마커를 찾지 못했고 표적항암제 단독 투여만으론 종양억제 효과도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인간 표피성장인자수용체(HER2)가 과발현되거나 증폭된 HER2 양성 위암은 전체 위암의 약 12~15%를 차지한다. 암세포 표면에 붙어있는 HER2 수용체가 암세포를 빠르게 분열시켜 음성보다 공격적인데 허셉틴 1차 치료의 반응률(ORR)은 47%, 전체생존기간(mOS)은 13.8개월에 불과했다. 2명 중 1명 꼴로 효과를 보이는데 그마저도 생존기간을 1년 남짓 늘리는 데 그쳤다. 치료차수가 늘어날수록 생존기간이 감소해 3차치료 단계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5.7개월 수준에 머물렀다.
이런 가운데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ADC·Antibody Drug Conjugate)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가 작년 9월 HER2 양성 위암의 3차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엔허투는 2회 이상 치료 경험이 있는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위 또는 위식도접합부 선암종 환자 대상의 2상 임상연구에서 51%의 객관적반응률(ORR)로 이리노테칸·파클리탁셀 등 기존 항암화학요법(14%)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엔허투 투여군의 전체생존기간(mOS)은 12.5개월로 대조군(8.4개월) 대비 사망 위험을 41% 감소시켰다.
라 교수는 "위암 3차치료에서 1년이 넘는 생존기간을 증명한 최초이자 유일한 HER2 표적치료제가 등장했다”며 "효과가 강력한 데도 이상반응이 충분히 관리가능한 수준이라 전이성 위암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가 다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