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리포트] 전방위 '바이 아메리칸'…바이오·탈탄소도 보조금 차별 대비해야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美, 인프라까지…對中 산업무역 전쟁 확대]
美, IRA 논란 속 건축자재 지침 공개
정부 입찰 참여땐 미국산 자재만 써야
반도체·배터리 이어 공급망 개입 확대
WTO·FTA 원칙과도 무관하게 적용
바이든, 10년간 '국제질서 재편' 천명
잇단 차별 조치로 첨단산업 보호 전망
韓 기업들도 기존 보조금 사례 파악
미국산 사용 면제요건 등 살펴봐야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국내 전기차 업계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상의 보조금을 받지 못해 발생했던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8일 미 백악관 관리예산처(OMB)는 또 다른 보조금 차별 조치인 ‘건축자재 지침’을 발표했다.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자국 인프라 건설 사업에 사용되는 건축자재에 대한 ‘미국산 사용 기준’ 신설 방침을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번 건축자재 지침으로 국내 비철금속, 플라스틱 및 폴리머, 유리, 광섬유케이블, 목재, 건식 벽체(석고 플라스터) 등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동시에 이 지침이 정부조달 입찰에만 적용되기에 국내 업계에는 피해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주한미군 조달 외에 미 본토 조달 시장에 국내 기업의 참여가 드물기 때문이다.



-건축자재도 차별 조치…美기업 유리해져


확실한 것은 미국이 이제 범용 제품에 대해서도 공급망 개입에 나섰고 앞으로 적용 품목이 더욱더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지침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이나 다수 자유무역협정(FTA)이 농산물에 적용하는 완전생산기준 수준의 높은 국내산 요건을 범용 제품인 건설자재에 부과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공급망을 아예 무시하고 미국에서 추출된 원재료를 이용해 미국 내에서 온전하게 가공해 만든 완제품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미국은 이로써 반도체·전기차와 배터리에 이어 인프라 건설까지 미국 기업에 유리한 차별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2021년 11월 15일 바이든 행정부는 1조 2000억 달러의 예산을 수반하는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 법(인프라법)’을 제정했다. 인프라법은 ‘더 나은 미국 재건법안(BBB)’의 일부로 역대급 인프라 투자로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 사업을 총괄하기 위해 법 제정 당일 대통령 행정명령(EO 14052)으로 인프라 태스크포스까지 발족시켰다.




인프라법은 애초부터 미국산 조달 특혜 제도인 바이 아메리칸 규정(Buy American Requirements)이 적용되도록 설계됐다. 바이 아메리칸 규정은 연방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철강·제조품 및 건축자재에 대해 미국산 사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이 규정에서 철강에 대한 미국산 요건을 보면 주조에서 코팅까지 전 제조 공정이 미국 내에서 발생한 제품이어야 한다. 제조품은 국내 제조 원칙을 기본으로 하되 부품의 전체 원가 중 국산품 비율이 55% 이상이어야 한다. 건축자재는 모든 제조 공정(all manufacturing processes)이 미국에서 발생해야 한다. 건축자재 규정은 명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품목별로 생산 특성이 달라 실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나온 지침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됐다.



-美, 법 잇따라 바꿔 자국 산업 활성화


OMB는 연방정부의 인프라 사업에서 바이 아메리칸 규정이 범정부 차원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조품의 가격 산출(주로 부품 비용 요소) 방식과 건축자재에 대한 ‘모든 제조 절차’ 규정도 새로 만들었다. 부품 비용은 부품 구매 때 발생한 운송비와 관세를 포함하거나 부품 생산 때 운송비와 부대비용(이익은 제외)을 포함해 계산하도록 했다. 이는 원가를 부풀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WTO GPA나 다수 FTA에서는 정부 재정으로 일정 금액 이상의 물품 구매나 서비스(건설 등)를 발주할 경우 국내외 조달 기업을 대상으로 공개입찰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개정된 OMB의 바이 아메리칸 규정은 WTO GPA 및 FTA에서의 정부 조달 시장 개방 원칙과 무관하게 적용 가능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지나친 자국 이기주의로 집행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통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 연방정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없다. 2022년 8월 제정된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미국 및 외국 반도체 기업에 527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 상무부는 이달 말 보조금 세부 요건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인텔·TSMC 등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에 생산설비 구축에 필요한 재원을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대신 중국에 반도체 생산시설 신증설을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 준수 의무를 부여받았다.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해서도 보조금 지급 요건을 통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시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리튬·네오디뮴·코발트 등 희소금속 생산에 있어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고 전기차 생산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어 미국은 중국에 대해 직접적인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을 규정한 IRA는 기본적으로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미국이나 미국이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된 원부자재를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고 국내 업체들은 리튬·코발트 등 중국산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하는 국내 업체들은 조달선을 변경해야 하고 완성차 업체는 미국 내 생산설비 공사를 이제 막 시작한 상황이다.



-'전략적 디커플링'으로 中 배제 가속화


지난주 발표된 건축자재 지침은 바이 아메리칸 규정에 근거해 미국 내 조달 요건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연방 보조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국은 산업 기반 구축과 더불어 미국 내 생산 활동을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기를 부양하고자 한다. 이면에는 범용 제품에 대한 자급도 개선과 중국산 의존 감소 목적도 내포돼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공급망 왜곡과 물류 차질로 한동안 기본적인 상품 수급에 애로를 겪은 바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많은 상품에 대해 세계 최대 공급자 지위에 있는 중국이 상품을 무기화할 수 있다고 미국은 봤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반기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분리(디커플링)을 추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단기간 내 디커플링을 추진하면 엄청난 비용을 감내해야 하기에 전략적 디커플링으로 전환했다. 반도체·전기차와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대해서는 비용과 무관하게 당장 중국을 배제하고 범용 제품에 대해서는 리쇼어링(외국으로 나간 기업의 국내 회귀)과 국내산 사용 요건을 부과한 인프라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항공·우주 등 전략산업 '美 우선' 확대할 듯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10년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막고 국제 질서를 새로 형성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중국과의 산업무역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뜻이다. 2021년 집권 이후 미국의 산업정책 및 대중국 전략으로 보면 앞으로 다른 전략산업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인 분야를 예상하기 어려우나 바이오, 탈탄소, 항공·우주, 초음속 기술 등이 전략산업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 의사가 있는 관련 기업은 기존 사례를 참조해 보조금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미국산 사용에 대한 면제 요건이 규정돼 있다. 공공이익을 위배하거나 자국 생산·공급이 불충분한 경우 미국산 사용으로 총사업 비용이 25% 이상 증가하는 경우에는 규정 적용 면제를 허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사실상 완전생산기준에 준하는 미국산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비용이 상당히 올라가는 만큼 사업비가 증가할 수 있는 품목을 대상으로 면제 승인을 받아 정부 조달 시장에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교수는…우리나라 FTA 정책의 산증인으로 그동안 정책 연구 및 공식 협상에 널리 참여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국회 입법자문위원, 국제통상학회와 한국협상학회 회장, 외교통상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등 정부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통상교섭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및 국민경제자문회의 경제안보분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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