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란 건지 말란 건지…뒤엉킨 한전 정상화[뒷북경제]

尹 "전기·가스요금 인상폭·속도 조절"
2분기 대폭 인상 예정됐으나 날벼락
한전·가스공사 30조·12조 손실 버텨야
2분기 이후에도 총선에 인상 쉽잖아
이에 제2의 한전채 사태 재연 우려 커져


난방비 폭탄으로 들끓는 민심에 깜짝 놀란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서민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전기·가스요금의 인상폭과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역시 소상공인에 대해 난방비와 전기요금 분할납부를 추진합니다. 준비과정 미비로 실제 시행은 전기요금은 7월, 가스요금은 12월에야 이뤄질 예정이기는 하지만요. 이 외 정부는 서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난방원인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에 대해서도 가스요금 할인 수준인 59만2000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3일 서울 시내의 한 한국전력공사 협력사에서 직원이 1월 전기요금 청구서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공기업 정상화 로드맵이 뒤엉키고 있습니다. 요금의 단계적 정상화가 쉽지 않아진 데다 내년 총선과 맞물려 올 하반기부터 선거 정국이 본격화될 경우 공기업 재무 개선 작업은 또 뒷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한국전력의 지난해 적자가 30조 원을 넘길 것이 확실시되고 유럽 전쟁도 진정될 기미가 없는 가운데 한전채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가격 현실화를 통해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에도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곧 지난해 실적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예상되는 적자 규모가 30조 8900억 원 수준입니다. 1년 전의 5배가 넘는 적자를 내게 된 셈입니다. 한전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가스공사의 누적 미수금 역시 2021년 1조 7700억 원에서 1년 만에 9조 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12조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급격한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따른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전기요금을 ㎾h당 13.1원 올리고 가스요금을 1분기 동결하면서 2분기 이후 인상 요인을 반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시장의 요구치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한전·가스공사 경영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올해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은 ㎾h당 51.6원, 가스요금은 MJ(메가줄)당 39원이었습니다. 이조차도 2026년까지 한전의 누적 적자와 가스공사의 미수금을 해소하는 ‘속도 조절’을 가정한 수치였습니다.


이에 2분기 전기·가스요금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전날 비상경제회의에서 공공요금 인상은 하반기로 미루고 에너지의 경우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언급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에너지요금 결정의 키를 쥔 기획재정부와 산업부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실적을 고려할 때 동결은 쉽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제한적 인상’이 유력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선거 일정 등을 감안하면 올 2분기가 대폭 인상의 적기였는데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산업부가 내놓은 적정 인상액이 지난해 인상액보다 훨씬 크다는 점도 고민입니다. 지난해 전기요금은 ㎾h당 19.3원, 가스요금은 MJ당 5.47원 올랐습니다. 앞서 언급한 올해 적정 인상액인 51.6원/㎾h, 39원/MJ과 비교하면 훨씬 작은 수준입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에너지요금 인상만으로도 민심이 들끓고 있는데 산업부가 제시한 요금 인상 적정액은 전기요금의 경우 지난해 인상액보다 2.5배, 가스요금은 7배 이상 많다”며 “이를 다 수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에너지요금의 찔끔 인상이 결국 또 다른 폭탄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공기업의 채권 발행 물량이 많아져 자본시장을 교란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고 잠시 틀어막은 물가 인상이 뒤늦게 이뤄지는 폐단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한전채 발행 한도를 증액하는 한전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채권 발행으로 수십조 원의 적자를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1월 26일 서울 시내 가스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공들였던 ‘에너지 효율화’ 움직임도 무산될 수 있습니다. 산업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난방비 폭탄’ 프레임이 정부에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난방비를 절약하는 법이 잇따라 보도되는 등 수요 감축을 유인한 측면도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을 정도입니다.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남동발전 등 7개 전력 공기업은 지난해 사업 조정, 비(非)핵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총 5조 3000억 원 규모의 재정 건전화를 달성했습니다. 이들 전력 공기업은 올해도 3조 2000억 원 이상의 재정 건전화를 이룬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핵심인 에너지가격 정상화 없이는 이 같은 계획 달성은 요원합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요금 현실화를 추진하되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두텁게 하고 국민들에게 위기 상황인 만큼 인상이 불가피하며 절약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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