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입은행(수은)법 시행령 개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중소·중견 기업의 무역금융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에 따르면 지난해 무보의 중소·중견 기업 보험·보증료 지원 사업으로 수혜를 본 기업은 역대 최다인 2만 7286곳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8330곳)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이 사업은 수출협단체, 유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무보를 이용하는 중소·중견 기업의 원활한 수출을 위해 보험·보증료를 지원하는 제도다. 지원 기관도 매년 증가해 지난해 65곳에 달했다.
지난해 이 사업을 통해 중소·중견 기업이 무보에 납부한 보험·보증료 총액은 633억 1000만 원으로 이 가운데 133억 5000만 원(21.1%)을 지자체 등이 지원했다.
지난해 중소·중견 기업 3만 1348곳이 수출을 위해 무보를 이용했는데 이 중 87.1%(2만 7286곳)가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녹록지 않은 수출 여건을 대변하는 수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9일 수은의 연간 대외채무보증 총금액 한도를 무보의 연간 보험 인수 금액의 35%에서 50%로 확대하는 내용의 수은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이날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대외채무보증은 해외 법인이 국내 물품을 수입하면서 구매 대금을 국내외 금융사로부터 대출받을 때 그 채무를 보증하는 제도다. 현행 법령상 수은의 대외채무보증은 대출과 보증을 합해 대출 비중이 50%를 초과하는 거래에서만 보증이 가능하지만, 개정안은 이를 배제하는 거래를 신설하며 수은의 보증 여력을 확대했다.
또 개정안은 현지 통화 금융이 필요한 거래에 대해 수은의 대출과 연계가 없어도 대외채무보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신설했다. 수은의 대외채무보증과 무보의 중장기수출보험이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는 상품이라 기관 간 밥그릇싸움에 낀 새우 격인 중소·중견 기업에 불통이 튈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무보의 이익 대부분은 중장기수출보험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중소·중견 기업의 수출만을 보증할 수 있는 상품인 수출신용보증의 손실을 보전하는 구조다. 무보의 중장기수출보험 사업 수익이 줄어들면 수출신용보증료가 오를 수밖에 없고 재원이 더 투입되지 않는 한 중소·중견 기업 지원 대상이나 폭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수은법 시행령 개정안이 수은과 무보의 출혈 경쟁과 이에 따른 국익 훼손 우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는 무보의 보증 사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관련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이 사안에 대해 중소기업의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역시 “무보의 중장기수출보험 규모가 위축되면 수출신용보증료가 인상돼 가뜩이나 어려운 중견기업 수출 여건이 더욱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