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 지 한 달이 넘었다. 동북아 지역의 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소강 상태에 있다. 반면 동북아 지역은 계속 불안정해지고 있다. 중국의 정찰비행 풍선이 미국 본토 및 알래스카 상공을 날고 미국은 이를 격추시켰다. 북한은 최근 야간 열병식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미사일을 선보인 데 이어 18일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이는 일본의 방위비 증강에 대한 명분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자체 핵 보유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신냉전 체제로의 이행 움직임이 동북아 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신냉전 체제로의 움직임은 범인류가 풍요의 사회 이후의 발전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200여 년간 세계 각국의 목표는 철학적·사상적으로 아주 단순한 ‘부국강병을 통한 국민국가의 건설’이었다. 각 국가는 수요가 따르는 공급 정책을 통해 현재의 발전을 도모해 왔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먼저 성공했고 많은 개발 국가들이 앞다퉈 모방해 빠른 시간 안에 압축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인류 전체의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달성해 전 세계 인류의 생활 관련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 2010년 이후부터 문제가 생겼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는 전통 산업에 이어 디지털 대전환에 매진하고 있다. 디지털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두드러지면서 일부 독과점 업체들에는 기회가 되는 반면 많은 디지털 문외한과 비숙련 노동자들에게는 재앙이며 실업이라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빈부 격차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현장을 관찰해 가지 않았던 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일본은 ‘정상 국가’로의 복귀를 지향하면서 경제 발전의 목표로 ‘새로운 자본주의의 완성’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통화정책을 담당할 일본은행 총재로 통례를 벗어나 학계 인사가 임명됐다. 상상력이 가미된 정책이 기대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적 발전, 중국적 현대화를 주창하고 있다. 중국은 현대화의 목표로 인간의 행복을 중시하고 있다. 중국을 잠자는 사자라고 칭했던 나폴레옹을 소환하면서까지 중화 민족의 부흥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화는 일률적인 모델이 없다. 본질은 인적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효율, 공정, 안정, 질서 사회 구축을 위해 과교흥국(과학과 교육으로 국가 발전), 인재 강국, 농촌 지역 진흥을 강조하고 있다. 두 나라 정책의 핵심적인 방점은 보다 자주적인 인간 중시의 발전 철학에 찍혀 있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뚜렷한 발전 철학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 막 출간된 학계 원로와 현역 언론계 인사의 충정 어린 역저도 펼쳐봤다. 개발 연대는 ‘선진국 발전 모델 따라하기’였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또 하나는 1인당 소득 10만 달러를 달성하자는 것이었다. 정부도 연금·교육·노동 개혁, 한미 동맹 강화 등에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왜’와 ‘어떻게’라는 철학적 사고와 방법론이 빠져 있다. 구태의연한 방식은 해결책이 아니다. 근사답을 제시하는 교과서도 없다.
사회 지도층부터 문제 해결에 미쳐야 한다. 문서를 중시하는 대면 보고나 회의에 매몰되지 말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정부 고위 인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 연출된 현장 방문이나 이벤트성 행사, 천편일률적인 연설은 이제 그쳐야 한다. 문제가 되는 노동·출산·요양·지방대학·PC방·고시촌·귀농 등 현장을 찾아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작성하고 있는 답안지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는지를 체감해야 한다. 학계도 이벤트성 회의에서 탈피해 당국자까지 포함된 끝장 토론을 통해 의견 수렴의 장을 여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이길 수는 없는 것 같다. 시장경제 체제의 우위성이 증명해 준다. 인류는 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신냉전 체제로의 이행 움직임도 그 방향에서 재검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