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부처 합치고 온라인 처방도 가능…"韓 헬스케어에 도전장"

■中하이난 ‘의료관광특구’ 가보니
習 지원에 종합병원·센터 등 조성
본토 넘어온 중국인들로 북적여
수입승인 간소화·세금 감면부터
행정부 통합 등 당국 움직임 활발
비자 문턱 낮추며 외국인 유치 총력
의료관광 앞선 韓 따라잡기 안간힘

중국 하이난성 러청국제의료관광선행구 내 이링라이프케어센터에서 의료진이 20일 진맥을 통해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의료관광 특화를 위해 중국인에게 익숙한 중의학과 서양의 최신 의료기술을 접목한 의료기관을 운영 중이다. 사진=김광수 특파원

중국 하이난성의 성도인 하이커우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충하이시 보아오진.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이 열리는 이곳은 의료관광특화단지로 지정돼 천지개벽 중이다. 20일 하이난성의 초청으로 방문한 러청국제의료관광선행구(러청시범지구) 내 이링라이프케어센터에는 겨울 추위를 피해 건강관리를 받으러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인들로 북적였다. 2017년 1월 문을 연 이곳은 축구장 24개에 해당하는 17만 ㎡ 부지에 종합병원 1곳과 9곳의 센터(건강검진·헬스케어·뷰티케어 등)를 갖추고 있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을 앓거나 고령의 중국인들이 일인당 평균 45만 위안(약 8505만 원)의 회원권을 구입해 짧게는 매년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이곳을 찾는다. 센터를 안내한 허위 매니저는 “회원 수가 30만 명을 넘었으며 가장 비싼 2000만 위안(약 37억 8000만 원)짜리 패키지를 보유한 회원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중국 정부는 2013년 보아오 지역에 러청시범지구 설립 계획을 수립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이난성 전체를 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힌 뒤 종합병원과 의약품·의료설비 연구개발(R&D)단지가 보아오로 몰려들어 관광산업과 연계한 의료관광특구가 조성되고 있다. 2018년 시 주석이 러청시범지구를 찾은 후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수술과 헬스케어 등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옌루카이 러청국제의료관광선행구 관리국 선전부장이 20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8년 4월 방문해 보아오를 의료관광 특화 지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던 것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광수 특파원

우선 당국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러청시범지구에 △의료기기·의약품 등의 등록·수입 승인 등 간소화 △외국인 의료 인력에 세금 감면 등 혜택 지원 △진출 기업 및 인력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드웨어 시설과 서비스의 고급화는 물론 글로벌 기업의 진출을 도모해 내국인은 물론 해외 의료관광 수요까지 흡수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국무원은 2018년 특허 의료기계·약품 심사 비준 권한을 하이난성에 이양했다. 해외에서 승인된 신약이지만 중국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약품도 이곳에서는 사용이 가능하다. 2021년에 이렇게 신약을 처방한 환자가 9963명으로 전년 대비 483%나 급증했다. 중국에서 자국 내 보건의료기술과 의약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을 만회하고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선진 의료기술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한 조치다. 옌루카이 러청시범지구 관리국 선전부장은 “2017년 5월 해외에 출시된 인공와우 장비를 2019년 10월부터 이곳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장비를 착용하고 청력을 되찾은 아이들이 활짝 웃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시설 외에 의약품·의료기기 개발 업체들이 대거 포진한 러청시범지구의 ‘의료+약물’ 통합 관리 감독을 위해 국가의약관리국과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을 합병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규제 개혁을 위한 중국 최초의 행정부 통합 사례다.


온라인 약품 처방도 용이하게 했다. 하이난 전자처방센터를 온라인 병원, 하이난 의료기관 처방 시스템, 처방약 판매 플랫폼, 의료보험 정보 플랫폼, 결제 기관, 보험회사 등과 연결해 ‘온라인 원스톱 서비스’를 구현했다.



옌루카이 러청국제의료관광선행구 관리국 선전부장이 20일 존슨앤드존스가 개발힌 인공수정체를 소개하고 있다. 러청시범지구에서는 해외 승인을 받았지만 중국에서 승인받지 않은 의료기술을 적용한 치료가 가능하다. 사진=김광수 특파원

외국인 수요를 늘리기 위해 비자와 언어 장벽의 문턱도 낮췄다. 하이난성은 2018년 5월부터 하이난을 출입하는 5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최대 30일까지 무비자 방문을 허용했다. 관광만이 아닌 치료와 회복을 위한 의료관광 수요까지 잡겠다는 의도다. 병원마다 영어가 능통한 인력을 확보해 환자와 의료진의 원활한 소통을 돕는다. 이 밖에도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의 진입 제한을 완화해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 지원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 최초로 ‘글로벌 면허 의약품 보험’을 출시하고 의료와 보험·의약품을 모두 포함하는 산업 생태계도 구축한 상태다.


노력의 결과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의료관광으로 2021년 하이난을 찾은 인원은 12만 7300명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라 중국인 수요가 대부분이었지만 전년 동기 대비 90.6%나 급증한 수치다. 하이난성은 2025년까지 연간 중국인 50만 명을 러청시범지구로 유치하고 의료관광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150만 명을 막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집토끼를 관리하는 동시에 산토끼는 도망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해외 의료관광 수요를 하이난으로 돌려 의료관광 강국인 한국·싱가포르·인도 등과 경쟁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한국으로 의료관광을 떠나는 중국인을 잡겠다는 노림수도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이 유치한 외국인 환자(14만 5842명) 중 중국인은 2만 8021명(19.2%)으로 미국(2만 8889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하이난성은 첨단 의료 미용 산업 발전 지원 계획도 발표했다. 이링라이프케어센터의 경우 한국의 JK성형외과병원과 손잡고 뷰티 한류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중국 하이난성 러청국제의료관광선행구 내 이링라이프케어센터에서 20일 이용객들이 서예를 하며 여가 시간을 즐기고 있다. 사진=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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