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는 가운데 올해도 상장사 절반 이상이 3월 하순에 몰리면서 어김없이 ‘주총 대란’이 재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많은 기업들의 주총이 몰리는 소위 ‘슈퍼 주총데이’는 3월 29일로 예상됐다. 행동주의 투자 열기가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되풀이되는 ‘주총 쏠림 현상’으로 주주권을 내실 있게 행사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금융 당국의 노력도 ‘헛바퀴’만 도는 모양새다.
21일 서울경제가 1월 말부터 이날까지 정기 주주총회 소집 결의 공시를 낸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398곳을 분석한 결과 이들 중 198곳이 3월의 마지막 5거래일(27~31일) 동안 주총을 열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9일은 한국앤컴퍼니와 엔씨소프트, KCC, 코웨이, 한온시스템, 팬오션, 휠라홀딩스, JW홀딩스 등 80곳의 기업이 주총 개최를 예고하고 있어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3월 넷째 주(20~24일)에도 118곳(31%)의 상장사가 주총을 개최해 80%의 상장사들이 3월 하순에 쏠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2월 중 주총을 열었거나 개최할 기업은 스팩·리츠 등 투자회사를 제외하면 올해도 27곳에 불과했다. 3월 첫째 주를 주총일로 택한 기업 역시 2곳뿐이다.
다음 달 정기 주총 시즌의 스타트를 알리는 기업은 2일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주총을 여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114090))다. 주요 그룹별로 살펴보면 삼성그룹은 다음 달 15일부터 정기 주총을 본격화한다. 삼성전자(005930)와 삼성전기, 삼성SDI가 15일, 삼성엔지니어링(028050)과 삼성카드(029780), 에스원(012750), 호텔신라(008770)가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삼성물산(028260), 삼성증권(016360)이 17일에 개최한다.
LG그룹은 LG디스플레이(034220)가 21일, LG화학(051910)이 28일 주총을 열 계획이며 현대차그룹은 17일 기아(000270)를 시작으로 20일 현대로템, 22일 현대제철(004020)과 현대모비스(012330)가 정기 주총을 연다.
3월 마지막 주에 몰리는 주총 쏠림 현상은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 권리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복수의 종목에 투자하고 있는 주주들은 주총 참석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 당국은 주총 예상 집중일을 발표하고 집중일 이외에 주총을 여는 기업에 공시 우수 법인 평가 가점, 불성실 공시 법인 벌점 감경 등의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혔지만 효과는 크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올해처럼 행동주의 펀드 및 소액주주의 입김이 커진 상황에서는 주총 쏠림 현상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더욱 커질 수 있다. KT&G(033780)와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은 KT&G를 상대로 KGC인삼공사의 분리 상장과 주주 환원 확대, 사외이사 추천 등을 요구해왔으나 KT&G가 거부해 양측 간 충돌이 격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KT&G 소액주주는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DB하이텍(000990)의 주총도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해 DB하이텍의 물적 분할을 저지한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주당 2417원 현금 배당 △감사위원에 한승엽 홍익대 교수 추천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회사 측에 요청했다.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하는 안건을 상정할 포스코홀딩스의 주총 결과도 주목된다.
기업들은 주주총회 전 감사보고서·사업보고서를 미리 제출해야 하고 주총 개최 일정 등을 고려하다 보니 준비 시간이 촉박해 3월 말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개정 상법에 따라 4월에도 정기 주총을 개최할 수 있게 됐지만 정관 변경을 필요로 한다. 4월 주총 개최에 대한 인센티브도 부족해 기존 관행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코스피 12월 결산 상장사 총 776개사 중 4월에 주총을 열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한 회사는 62개사에 그친다. 또 새로운 경영진 구성이 2분기 이후에 이뤄지면 사업 계획 수립에 애로 사항이 많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올해 배당기준일 관련 제도까지 개정되면서 회사들이 기준일 관련 정관 변경에 대해 검토할게 많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