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소주와 맥주 등 술값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자 주류 업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각종 원부자재 값에 주세마저 올라 가격 인상이 절실하지만, 술 값을 올렸다가 자칫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가격을 통제하는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세금이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올려야 하는지 업계와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 부총리는 "소주 등 품목은 우리 국민이 정말 가까이 즐겨하는 물품"이라며 "물가 안정은 당국의 노력, 정책도 중요하지만 각계 협조가 굉장히 필요하다. 업계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주류 업계에서는 추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정부가 술 값을 인상하지 말라며 일종의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재부는 최근 발표한 최근 발표한 세법 시행령을 통해 오는 4월부터 맥주에는 ℓ당 885.7원, 막걸리는 ℓ당 44.4원의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보다 3.57%(각각 30.5원, 1.5원) 오른 금액이다. 맥주의 경우 주세(酒稅) 인상폭이 역대 최대다. 지난해에는 ℓ당 20.8원을 인상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팔리는 국산 캔 맥주(500㎖)의 출고가(제조원가+세금)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3%로 절반 이상이다. A 주류업체 관계자는 "맥주로 벌어들이는 수익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금을 올려놓고, 맥주값을 인상하지 말라는 건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주의 경우 출고가의 72%가 세금이다. 소주의 경우 맥주처럼 주세가 인상된 것은 아니지만, 원가 부담이 출고가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소주 원가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병값이 지난달부터 기존 병당 183원에서 216원으로 18% 인상된 것이 대표적이다. B 주류업체 관계자는 "각종 원부자재 값에 인건비와 가스비, 전기료 인상 만으로도 이미 가격인상 이유가 충분한 상황"이라며 "만약 세금 인상분을 판매가에 녹이지 못할 경우 영업 마진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이 일부 음식점을 향한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하이트진로가 '참이슬'의 출고가를 기존 1081원에서 116원으로 85원 인상했을 당시 일부 음식점은 소주 한 병의 가격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1000원 가량 올린 바 있다. C 주류업체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출고가 인상분에 인건비와 재료비 부담을 더해 소주 값을 대폭 올려 받으면서 전체 주류 업체가 물가 인상의 주범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