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발 감원 삭풍이 닥치며 해고 압박에 놓인 미국 정보통신(IT) 산업 근로자들이 국내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직장인용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로 속속 모이고 있다. 빅테크들이 엔데믹·고금리 기조에 맞춰 다시 인력 규모를 줄이자 이에 대응해 정보를 교류하고 사례를 수집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트위터,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대규모 감원에 나서고 있다. 팬데믹 국면을 맞아 비대면 서비스가 크게 성장해 이에 맞춰 인력을 대폭 늘렸다. 이후 엔데믹으로 서비스 수요가 감소하고 수익성이 악화되자 다시 인력 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고금리 기조로 인한 경기 악화까지 더해지며 감원 삭풍이 한층 매서워지고 있다.
23일 블라인드 운영사 팀블라인드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들이 감원 결정을 내린 전후 앱 가입자 수가 대폭 증가했다. 메타버스 사업을 주력으로 밀었지만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메타는 지난해 11월 9일(현지시각) 전체 직원의 13%에 해당하는 인력을 대규모 정리해고한다고 밝혔다. 발표 전날인 8일 하루 동안 가입한 3000명을 포함, 일주일간 7000명에 달하는 메타 직원이 블라인드에 가입했다. 이달 초 기준 전체 메타 직원의 80% 해당하는 6만 7000명이 이 앱을 통해 회사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론머스크가 인수한 뒤 전세계 인원 절반이 날아간 트위터 직원들도 블라인드의 주요 이용자다. 트위터가 대량 해고를 예고했던 시점(지난해 11월 초) 전후 3주간 1400명의 트위터 직원이 블라인드에 신규 가입했다. 해고 시점 기준 전체 직원의 95%가 블라인드에 가입한 상태였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블라인드 신규 다운로드 수는 6만 2153회로 직전 달 대비 92.3%나 증가했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 1만 2000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히자 구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관찰됐다. 1월 20일(현지시각) 해고 발표 직전 24시간 동안 1000명의 ‘구글러’가 앱에 유입됐다. 해고 직후에는 전체 구글 직원의 40%에 해당하는 직원이 현재 블라인드를 애용한다. 구글에 하루 앞서 인력 감축 방안을 밝힌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도 발표 직전 한주 동안 6000명의 직원이 블라인드로 몰렸다.
역대급 감원 삭풍에 익명을 통해 관련 정보를 교류하려는 수요가 높아졌지만, 그간 미국에서는 이렇다 할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MS 직원들이 이용하는 ‘포럼’처럼, 일부 기업에는 자사 직원들이 활용하는 익명 기반 서비스도 있지만, 사측이 운영한다는 점, 사용성 문제 등을 이유로 직장인 전반으로 확대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블라인드 관계자는 “링크드인이 블라인드와 비견되기도 하지만 기명으로 회사 평판을 쓴다는 점에서 차이가 분명 있고, 회사별 커뮤니티도 기밀 유지에 대한 불안 때문에 보편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의 인기는 사회 각 영역에서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소속 집단에 대해 교류하는 데 익숙한 한국형 익명 커뮤니티 문화가 미국에서 적중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포털 기반 각종 익명 게시판, 페이스북에서 운영되던 대나무숲 등처럼 익명 소통 수요를 관련 서비스로 풀어낸 노하우가 미국에서도 통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블라인드가 인기를 끈 뒤 비슷한 앱 3개가 나왔지만 결국 블라인드를 넘지 못했다”며 “오랫동안 익명 소통에 대한 수요를 연구하고 서비스를 기획해 온 노하우를 단순히 외형만 모방해서는 따라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